작성일 : 17-09-21 14:13
이상선 장로 (5)
 글쓴이 : 관리자
 


 (5)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부모님과 집사람은 이런 날이 올까봐 눈물의 시간을 보냈는데 다시, 온 가족이 기도로 매달리면서 길을 찾는 중에 공직에 나가는 방법 뿐 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치하에서의 공직이란 우리 조선 사람들 눈에 언제나 ‘친일’이라는 부정적인 명칭이 따라다니게 되는데 그 중에 가장 우호적인 공직은 산림 공무원입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쳐서 처음으로 발령 받은 곳이 지금 삼팔선 이북의 강원도였습니다. 공무원 신분으로 징용은 면했지만 집안에 과수원과 할 일이 태산 같이 많고 특히 사랑하는 부모님과 처자식을 멀리 두고 첩첩 산골에서 일 년을 보내야 했는데 근무하는 시간 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았고 결국 하나님은 그때도 기도를 쌓는 기간으로 주셨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외로움과 언제 끝날지 모를 이별의 아픔을 견딜 때 집에서는 팔방으로 도움을 요청하여 다시 내무 공무원 시험 날짜를  알아냈고 그 시험에 합격되면서 우리 마을 면사무소 주사로 발령 받아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것이 일제 강정기 마지막 1945년 해방이 되기 전까지 산림청을 포함한 3년의 공직이 나의 과거 이력서입니다. 어쩌면 부끄러운 과거지만 그래도 고향에서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받으며 정부의 지시도 따라야 하지만 고향을 사랑하고 내 부모님이 계시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고향 분들은 나를 잘 도와 주었고 물론 부끄러운 일도 안했지만 그분들이 한없이 고맙기만 합니다. 아마 삭개오의 심정이 그랬을 것입니다. 자신이 있기에 4배로 갚겠다고 큰소리 쳤을 것 입니다.

일제 말기, 공출이 극심했을 때 차라리 친족으로 있는 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공정하게 배분하면서 함께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때도 우리 가족은 언제나 눈물의 기도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조선의 앞날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렸고 해방이 있기 몇 달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일본 사람들은 그들이 곧 망한다고 귀뜸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징용을 면한 혜택을 가슴앓이로 견디어 가다가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해방이 되었습니다. 음율군과 황해도 전체가 들석이는 만세소리는 잊을 수 없는 감격이었습니다. 모두가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달리고 서슬퍼렇던 일본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서로를 위로하며 그간 고생했다고 모두들 따뜻한 손을 잡았습니다.
 
진절머리 나던 일본이 물러가고 다시 가장의 자리에서 가업을 돌보며 이제 고생이 끝나고 행복이 기다리는 줄 알았습니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세상 분위기가 이상해서 그날은 아버지께 사과를 평양 객주에 갖다 주고 오라고 했더니 물건을 중간에 맡기고 빈손으로 오셔서 6·25 전쟁으로 평양 사람들이 다 피난을 갔고 온통 피난민 행렬이 줄을 잇기 시작했으며 하늘에서는 요
란한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멀리서 대포소리가 들리는 전쟁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이상선 장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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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년생, 한국 연세로 106세 되신 이상선 장로는 슬하에 4남2녀 육남매를 두었으며 시온선교합창단 정성자 권사의 친정 아버지로 온 집안이 하나님 나라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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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간증(26)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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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선 장로(25)201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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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선 장로(24)201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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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선 장로(23)201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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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선 장로(22)2018-02-01

(22)‘내려 놓기’란 말 알지요, 저도 압니다. 그러나 살아가다보니 말은 쉽게 하는데 막상 내려놓지를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두 손 들고 항복을 해야 하는데 죽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공장 문을 닫고 다 잃고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이상선 장로 (21)2018-01-25

(21)회사는 문을 닫았고 없는 중에 마지막 남은 땅도 교회에 기증을 마무리 한 후 생각하니 그동안 밤낮 고생하고 상한 마음을 안고 군에 입대한 아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금은 군 생활이 길지도 않고 여유가 있지만 60년대 초 군 생활은 배고프고 힘들고 사고도 많고 그시절 입영 통지서를 받으면 온

이상선 장로 (20)2018-01-18

(20)좋은 물건이 생산되고 성실한 직원들 덕분에 분명 성공한 회사였지만 굶으며 추위를 견뎌가며 38선을 넘어온 피난민 출신 사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쌩 떼를 쓰며 달려드는 도움의 요청을 거절 할 수가 없었고 그 규모가 커 자금 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주)상신메리야스 공장은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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