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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본것같은성지순례] 마가의 다락방 (Room of the Last Supper)

마가의 다락방 (Room of the Last Supper)

시온산에서 중요한 장소는 아마도 마가의 다락방일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유명하고 중요한 사건들이 이곳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 사건이 있었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셨던 곳이며(눅 24:33-43), 가롯유다 대신 맛디아를 제비뽑기로 선출(행 1:26)했으며, 120문도가 일심으로 기도하여 성령충만(행 2:1-4)을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기독교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된 곳으로서 교회의 기원을 이루는 역사적인 곳이다. 이곳은 하나님의 은혜로 감옥에서 빠져 나온 베드로가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행 12:12). 그리고 이곳에서 서기 48년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렸었다(행 15:1-29).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여전히 이곳의 공식 명칭은 “최후의 만찬방”인 것이다.  그만큼 이 사건이 중요했으며, 그렇기에 이 장소의 사건을 생각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도 그렸다. 

우리가 순례하는 오늘날의 마가의 다락방은 마가의 어머니 집터가 있었던 장소라고 전하여 내려온다. 서기 70년 디도장군의 예루살렘 학살 전, 예수님의 예언(눅 19:41-44)을 기억했던 메시아닉 쥬(유대인) 공동체는 데가볼리 중의 하나인 펠라(현재 요르단 북서쪽)로 피신했다가 전쟁이 끝난 후 74년도 경에 귀환하여 회당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그 이후 서기 614년에 아랍사람들에 의해 건축물이 파괴된 후 12세기 십자군이 세운 건축물인 것이다. 

이곳의 공식명칭은 “최후의 만찬장 (Room of the Last Supper)”이나 일반적으로 “마가의 다락방 (Upper Room)”으로 부른다. 다락방이라고 하는 말은 “2층방(Upper Room)”이란 뜻이다. 시온산에 도착하여 다른 순례객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5분도 안되어 “최후의 만찬장” 을 향해 2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2층으로 올라가서 의자가 있는 방이 나오는데, 그곳을 과감히 지나쳐 조그마한 아치가 있는 문을 통과해야 “마가의 다락방”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눅 22:12)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절기는 유월절이다. 1세기 예루살렘의 인구는 20만명이상으로 늘어났으며, 그야말로 사람으로 넘쳐나는 때인 것이다. 유월절 만찬은 가난한 사람도 지켜야 되는 절기 식사이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이곳에서 유월절 식사를 하셨다(눅 22:8).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눅 22:15)  

원하고 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절함이 있는 소원이다. 주님의 ‘원하고 원하였다’는 표현을 복음서는 한번만 기록하고 있다. 주님의 소원은 무엇이었나? 

바로 몇 시간 후면, 겟세마네에서 뿔뿔이 흩어질 제자들과 가야바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할 베드로와 그의 사역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만찬을 갖는 것”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식사할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 식사 후에 기념촬영 자세를 상상하며 그린 것이다. 1세기때 로마식 식사방법은 “ㄷ”로 된 식탁을 앞에 두고 약간 기댄 자세로 쿠션을 왼쪽의 팔꿈치로 괴고 식사하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저주하며 배반할 제자들을 앞에 두고 지상 최대의 사랑의 만찬을 보여주셨다.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6-28)  

예수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하나님의 사랑(Agape)은 세상의 사랑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12명의 죄인들과의 이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전 인류의 죄를 대신하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  주님의 간절한 소원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알고도 그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기꺼이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고 말하는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원하는 것인가?  

글, 사진_ 이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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