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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내 안에 충만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 – 이강배 목사

사도행전3:1-10

가스펠교회 이강배 목사

내 안에 충만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

   Covid-19이 퍼진 이후 참 우리의 모든 삶의 질 이라든지 신앙을 유지하는 방법도 많이 변했습니다. 정부의 지침대로 대면 예배 보다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다 보니, 그동안 교회가 설교했던 삶 속에 빛과 소금이 되는 강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서 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이 시간에도 신앙과 현실간의 괴리감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배를 들리 때 만큼은 말씀과 기도, 화려한 찬양 속에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진 것 같은 기쁨이 생깁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방금전의 예배의 감격과 기쁨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세상 앞에만 작아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시각에서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딜레마에 빠집니다. “왜 나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 같이 능력있는 삶을 살지 못할까?” 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 있는 삶은 내 방법, 내 열심, 내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기차가 철로를  따라가야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법대로 따라가야 이러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능력 있는 제자들이 될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고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제자들의 능력은 기도의 삶에 있었습니다.

 사도행전3: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사도행전은 기도로 이루어진 ‘기도행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수 없습니다.

 눅24장에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하고 계실 때 제자들은 육체의 연약함을 이기지 못하고 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시간은 육체의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이라 이해는 됩니다.

 막9:28-29을 보면“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귀신들린 아이를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고 쩔쩔매자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할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루에 삼천명, 오천명 회심하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도 먼저 한 마음 한뜻으로 모여서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1:14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야 비로소 기도가 바로 예수님의 능력의 원천이었던 것을 깨닫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구시(오후3시)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기도한 것입니다. 18,19세기 영국, 미국을 휩쓸고 간 1,2차 영적인 대각성 부흥운동도 알고 보면 기도에서 출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영국과 미국의 전역에 소그룹 기도모임의 숫자가 2천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 모임에는 어린 아이, 어른 모든 연령이 모여 기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볼 때 영적싸움이 결판나는 곳은 현장 이라기보다 기도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명언에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없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 참된 기도의 뜨거움이 회복되지 않으면 참된 예배도 열매 맺는 사역도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제자들의 능력은 예수의 이름을 의지할 때 라는 것입니다.

 행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본문에 나오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의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한 사람의 인생이 하루 아침에 걷고 뛸 수 있는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이름의 권세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이름에서 나온 능력과 권세가 그 앉은뱅이를 온전케 하였고 고침을 받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앉으뱅이가 온전케 되자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에 베드로와 요한을 외워 싸고 주목하자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3:12)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3:16) 무슨 말씀입니까? 제자들의 능력과 경건 때문에 앉으뱅이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그를 낫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세상과 삶의 자리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과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 무엇을 가지고 나갔습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다윗은 골리앗에 비해 어리고 전쟁에 능한 장수도 아니였지만 그에게는 여호와의 능력이 함께 했기 때문에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던진 돌맹이는 보통 돌맹이가 아니였습니다. 던지는 순간 돌맹이에는 여호와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동반되어 골리앗의 머리에 박혔던 것입니다.

 마28:18-20절에 예수님께서 부활승천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앞세우고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에 주님을 모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3:5). 너는 범에사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6)  매사에 우리는 방향과 길을 주님께 드리면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바라보고 실패한 것을 바라보고 묵상하지 말고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승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1. 제자들의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행3:3-5절을 보면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 앉은뱅이가 병을 고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돈이나 몇푼 얻어 볼까 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원했던 돈 몇푼 얻는 것보다 걷게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건이고  기쁨이였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그에게는 대단한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였던 같습니다. 단지 지나다니는 길목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 그에게 어떻게 치유가 일어 났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라고 말합니다. 

아가서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인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 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저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아가페적인 사랑이요, 무조건적인 선택이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구원받은 은혜도 따져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끝마쳐 지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 미문에 앉았있던 앉은뱅이에게, 사도 바울에게, 야곱에게 주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닌 달란트가 아니 하나님의 택하심이요 은혜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특출 할찌라도 하나님께서 “아니다”하시면 쓰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사용하시면 막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과 가정에서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만 하면 아무리 앉으뱅이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다시 일어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제자들의 능력의 원천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1)기도의 삶에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기도행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데 있었습니다.

 우리의 개인의 능력과 경건으로는 패할 수 밖에 없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3)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앉은뱅이 같은 개인, 가정, 사역, 직장의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만 하면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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