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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다 무너뜨려지리라!-밀알교회 노승환 목사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태복음 23:37-24:2

밀알교회 노승환 목사(3/8일 정기노회 말씀)

노회 산하 지교회들 섬기시는 목사님들, 장로님들 반갑습니다.

너무 안타깝게도 이번 노회도 이렇게 비대면으로, 줌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노회장이 되어서 진행하는 두 번 노회가 다 이렇게 비대면으로 진행이 됩니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하여간 우리 노회 역사상 전무는 당연하고 분명 후무 할 것이기도 하기에 본의 아니게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는 노회장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노회장이 되어 한 해 헌신하여 섬기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지난 1년 딱히 한 것도 없이 시간만 보낸 것 같아 노회원들 앞에 송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전에 없던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맞아 나라도 개인도 그랬지만 교회들도 처음엔 많이 당황하기도 하고, 고통 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년을 지나고 나면서 조금 뚜렷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요. 그래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하신 것처럼 코로나 팬데믹 역시도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얻은 유익이 분명 있고 오늘은 그래서 잠시 그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설교자 중에 william willimon 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들려주신 일화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서 중미에 있는 온두라스로 단기선교를 갔답니다. 선교 마지막 날 저녁에 선교 팀원들하고 온두라스 현지인 교인들 몇 분하고 함께 둘러 앉아 함께 찬양도 하고 간증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리 한명 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 하나씩 외우자고 누가 제안을 했습니다. 

돌아가며 좋아하는 성경구절 말하고 왜 좋아하는지 짤막하게 이유도 설명하며 은혜로운 시간을 가지다가 온두라스 현지인 어떤 나이가 꽤 드신 여자분 차례가 되었습니다. 통역을 통해 말씀하시는데 이 분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24장 2절 말씀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다 무너뜨려질 것이란 말씀과 마태복음에 이어지는 종말에 관한 말씀이 얼마나 저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지요.” 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갑분싸 되었겠지요. 함께 있던 미국 단기 선교팀원들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다 무너뜨려질 것이다! 어떻게 이 말씀을 좋아하실 수 있지? 어떻게 이 말씀이 위로와 용기를 주지? 속으로 그런 생각들 하고 있을 때 통역을 통해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덧붙여 주었습니다.

“내가 자식이 다섯 있었는데 그 중 넷이 5살 전에 다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다섯을 낳아서 그 중에 넷이 먹을 것 제대로 못 먹어 죽었다는 겁니다. 자기 품안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안고 이 어머니가 통곡하지 않았겠어요? 자기가 낳은 자식을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먼저 보내야하는 어머니의 한과 슬픔을 우리는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더 긴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선교 갔던 미국 단기 선교팀원들에게 큰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살이가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들 사람들에게 종말은 복된 소식이구나. 그동안 종말론은 무섭고, 끔찍하고, 공포를 자아내는 괴기하기까지 한 교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소망을 주는 교리이구나. 이 힘든 세상 그래도 살아갈 힘을 주는 교리이구나. 이 세상 현재 체재와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가치가 중심이 되고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질서로 이루어지는 새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복된 소식이구나. 이게 복음이구나.

동의가 되시지요? 이 세상이 어떻습니까? 기존의 부자는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 다섯에 넷을 영양실조로 먼저 장례 지내야할 정도로 점점 더 가난해 지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은 망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이 세상이 망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 좋기만 한 사람들이요. 이 세상 가치관에 너무도 어울리고 그것이 전혀 거리낌이나 부담이나 불편함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기독교의 종말론은 복음이 아니라 저주일 것입니다.   

그 여인의 간증은 선교 갔던 미국 교회 단기선교 팀원들에게 심각한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나에게 있어 이 세상은 무너져야 하는 세상인가? 아니면 무너지면 안 되는 세상인가?

오늘 본문 삼은 마태복음 24장 1, 2절을 시작으로 25장까지 이어지는 예수께서는 종말에 관한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전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종말론 교훈을 주님께서 하시게 되신 배경이 어떠합니까?

어떤 문맥의 흐름 가운데 다 무너지리라….그리고 세상 끝 날에 관해 말씀하시게 되었는가?

한 장만 뒤로 가보아도 확인이 됩니다.

23장 1절위에 제가 사용하는 성경은 제목을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을 꾸짖으시다’ 로 적어놓았습니다. 

23장 1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15절 똑같은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16절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17절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19절 맹인들이여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4, 25, 26, 27, 29…화 있을진저…화 있을진저…

그리고 33절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마태복음 23장은 저주 장입니다.

예수께서 이정도로 화내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아주 노골적으로 또 신랄하게 당시 유대교에게 저주를 퍼붓고 계십니다.

그러다 37절에 오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며 예루살렘을 보고 한탄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24장입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예수님께 가리켜 보였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같은 장면을 기록하며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보며 감탄한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방금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 바리새파 사람들을 꾸짖고 욕하고 저주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교를 꾸짖고 저주하신 겁니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유대교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인 성전 건물은 너무도 화려하고 웅장하고 멋있습니다. 그럴 듯해 보이는 겁니다. 

복음서가 사용하는 기가 막힌 대조법이지요.

이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시는 장면은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마태복음 외에도 마가복음에도 그리고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누가복음 두 복음서의 경우에는 다 무너질 것이라는 이 예언 전에 어떤 사건을 배치해 놓고 있는가? 우리가 잘 아는 과부의 렙돈 두 닢 헌금 이야기입니다.

헌금함에 부자들이 돈 넣는 것과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는 예수님께서 이 가난한 과부가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헌금에 관련한 교훈을 주는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은 것처럼 너희도 헌금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 과부의 헌금 이야기 시작 바로 전 구절을 보시면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네, 당시 종교가, 유대교가 종교지도자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한 사례로 등장하는 것이 41절에서 44절의 과부의 헌금 이야기입니다.

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십니다만 강조점은 그것이 아니고 생활비 전부를 넣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받아 점점 더 부자 되는 종교지도자들과 과부와 고아를 돌보지 못하고 제 역할 하지 못하고 있는 성전 종교를 비판하고 계시는 겁니다.

저 과부는 이제 뭐 먹고 살라고. 저 과부는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라고 저런 가난한 사람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으로 내게 하느냐며 흐느끼시는 주님의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구절이고 그 주님의 안타까움은 곧 분노로 변해 제자가 선생님 성전이 멋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하니까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하신 겁니다. 

이런 놈의 종교, 다 망해버려라! 하신 겁니다. 과부의 눈물을 씻어주지 못할망정 과부의 재산을 종교적 이유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이런 종교는 다 무너져버려라!

그리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 가운데 암시되고 있는 바는 바로 내가 내 몸으로 새 성전을 세울 것이라는 말씀이지요.이제 유대교 성전 중심의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새롭게 완성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출현을 기대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잘못된 체계가 무너지고, 그릇된 틀이 깨지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종말론이 외치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타락하고 악이 지배하는 이 세상이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그건 복음입니다. 그 체계가 무너지고 틀이 깨지면 본질은 더 값지게 드러나고 그 가치는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가 말하자면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는 시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미니 종말이라 할까요? 종말을 미리 맛본다고 표현할까요? 어떻게 표현하던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상황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의 요소가 많이 갖추어져 있는 그래서 궁극적 종말을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은 분명합니다. 

로마가 AD 70 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교도 더 이상 성전 중심이 아니라 회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유대교도 성전은 무너졌지만 함락 된 예루살렘에서 토라를 빼내어 왔기에 종교를 지켜냈습니다.

16세기 온갖 미신과 탐욕과 맘몬 우상으로 타락한 교회를 맞서 종교개혁을 이루지 않습니까?

오직 성경이라, 오직 은혜라, 오직 믿음이라 외치면서요.

코비드 19은 그 자체로는 분명 축복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재앙과 고난도 저주가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됩니다.

코비드 19으로 무너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시 코비드 19 이전과 똑 같이 돌아가지는 못할 겁니다. 괜찮습니다. 아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괜찮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체계가 무너지고, 그 frame 깨지면서 본질이 더 확연히 들어나는 은혜도 있습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필요한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 건물이 결정적으로 필요하거나 중요한 시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말씀이 중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건물이 아니라 결국 말씀이 우리 신앙을 지켜준 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배는 역시 이 산도, 저 산도 아닌, 즉 예배에 있어 핵심은 시공간이 아닌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하는 것임을 우리가 확인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이 성전 되신 신앙은 원래부터가 virtual 신앙, remote 신앙이었습니다.

아니 그 옛날 다윗, 솔로몬이 성전 지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건물에 갇혀있으랴….하셨고 솔로몬의 봉헌기도 중에도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내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고백했었습니다. 

건물 없어도 우리는 지난 1년 예배 잘 드렸습니다. 구역모임, 순모임, 목장모임 하고, 기도회도 잘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 VBS 도 온라인으로 했습니다. 

건물 있는 교회, 없는 교회가 이제 큰 차이가 없습니다. 건물 크기를 자랑할 이유도 없고 크고 웅장하고 화려하고 비싼 건물 가진 교회는 오히려 부끄러운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런 건물은 흉물이라 손가락질 당합니다.

교인수가 많다, 적다도 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이 정신없이 뺑뺑이 돌리던 교회에 매달리던 시대도 지나갑니다.

자녀들 신앙교육도 교회가 아니라 가정이 중심이 되고 부모가 책임져야 함을 늘 알고 있었지만 이젠 그 사실이 확인되고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 가운데 성도의 교제와 영적인 나눔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런 재난의 시기에 교회는 어려운 가운데 있는 교인과 이웃을 돌보는 희생과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동안 낀 거품들을 제거하고 다시 본질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겁니다.

이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이 기간 동안 북미 교회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국 개신교의 민낯이 확연히 드러나는 뉴스들을 접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사이비, 이단이나 일부 교회만 그렇다고 변명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전통 교회들도 전혀 다를바 없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긴 커녕 민폐가 된 모습을 보면서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자리에서 오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 보니 다시 소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작년 한 해 들려온 소리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소리입니다. 천지개벽이 조용히 된 적은 없습니다.와장창 소리 내고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들이 발악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어수선 하고 혼동스럽습니다. 복잡합니다. 새 질서가 세워지는 기간이기에 그런 겁니다. 나중에 역사학자들은 분명 2020년을 그냥 예사로운 해였다고 기록하지 않을 겁니다. 2020년은 분명 하나의 큰 분수령을 이룬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포인트는 이겁니다. 우리는 코비드 19으로 인해 지금 종말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다시 오심을 깨어 준비하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은혜의 시간입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괜찮습니다. 아니 좋습니다.

뉴노멀, 새로운 일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갑니다. 새 도화지에 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잘 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잘 그리면 됩니다. 노력해도 무너지지 않던 것들이 알아서 저절로 무너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본질에 집중하고, 그 본질 회복에 더욱 힘쓰는 우리 노회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코비드 19으로 인해 신앙에 손해를 보셨습니까? 아니면 주님과 더욱 가까워 지셨습니까?

교회가 더욱 어려워지셨습니까? 아니면 더 큰 소망이 생겨나셨습니까? 교회 건물에서 지난 1년 예배하지 못했다고 성도들이 신앙이 없어셨습니까? 아니면 더욱 말씀 사모하고 예배를 귀하게 여기게 되셨습니까?

너희에게 화가 있다. 눈 먼 자들아!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하시며 다 무너질 것이다 하셔서 마땅히 무너질 것들이 무너진 것은 축복입니다.

내가 새롭게 세우겠다 하신 예수님의 선언에 믿음을 얹어 새 창조의 일꾼들이 다 되시는 저와 우리 노회원들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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