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 우파라는 정치 이데올로기 거부하기 –
” 누가 통치하기를 바라는가? 권력자인가? 예수인가? ”
예수님 당시에도 좌파와 우파가 있었습니다.
로마 식민지에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 메시야가 오면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라는 “메시야 대망사상” 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580여년의 영적 암흑기, 그리고, 로마의 정치적 식민지… 메시야를 그토록 오랜 시간 기다리고 고대한 끝에 드디어 우리 구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2020여년전, 12월 바로 요맘때입니다.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1:11) ”
주님은 이스라엘의 왕, 구원자, 통치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왕의 통치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했지만 정작 왕이신 주님을 거부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통치 방식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평강의 나라, 그분의 나라를 알지 못합니다.
그토록 기다린 메시야는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습니다. 흠모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국(Empire)의 가이사 통치로부터 우릴 구원해 주기에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나사렛 빈민, 흑수저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기대와 신뢰를 줄 수 없는 미천한 나사렛 목수의 아들입니다. 현실의 절망과 고통에서 당장 건져줄 메시야로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예수를 메시야로 보는 그룹과 이단으로 보는 그룹으로 나뉘지만 이스라엘의 독립과 구원은 민족적 열망, 모두가 고대하는 간절한 소망이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민족주의 독립 운동가들인 젤롯당(Zealots)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정치적) 좌파입니다. 좌파중에서도 온건파와 급진파가 있습니다. 둘다 이스라엘의 자유독립을 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합니다. 한편 현실 도피적 종말론 신앙을 가진 에세네파(Essenes)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말씀에만 착념하는 경건주의자들입니다. 또 당시에 바리새파 (Pharisees)가 있었는데 이들은 보수주의 우파입니다. 거룩과 의, 질서와 전통, 율법를 중시하는 보수세력입니다. 어떠한 댓가를 치러서라도 그들은 보수주의 가치, 질서와 전통을 지키는데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내 나라는 이땅 가이사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 하며 주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나라를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이땅의 나라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말하자면 “좌파도 아니며 우파도 아니라고 말씀 합니다. 오히려 종종 좌파(젤롯 시몬), 우파 (바리새인)를 꾸짖습니다. 어떤때는 유대인들의 정치 이데올로기” 전쟁을 멈추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 도대체 뭘 어쩌라는 말인가? 우리의 고민이 거기에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독립과 자유인가? 가이사(시저)의 나라 로마에 순응인가? 예수의 나라(하나님 나라- 바실레이아)는 도대체 무엇인가?
로마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운동이 무슨 잘못인가요? 민족주의 좌파인 열심당 (Zealots)의 신앙과 구약을 철저히 지키려는 열정(Zeal)이 잘못인가요?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에 대한 충성(loyalty)을 떠났기에 바벨론 포로, 처참한 지경이 된것 아닙니까? 600년 가까이 무너진 삶,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안지켜서 신구약의 중간기, 혹독한 영적 암흑기를 보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로마 식민통치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참으로 무심한 이야기를 합니다. 좌파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모두가 자유 독립, 변화를 원하겠지요. 주님이 메시야라면 압제와 고통으로부터… 세상에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메시야적 표적 (semeion), 하나님 나라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것 아닙니까? 사람들은 계속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럴때마다 주님의 답은 너무나도 무심합니다.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유와 독립, 구원을 기다린 것이 도대체 얼마입니까?
좌파 유대인중 시몬(Zealots Simon)은 열심을 다해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요? 일제시대라면 독립을 원하는것 당연한 것 아닐까요? 정치적 구원을 원하는 것이 문제인가요? 독립운동 자체가 문제가 있나요?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 시저(가이사)의 나라에 대한 저항운동이 주님의 사명이 아니었기에…. 제자들에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좌파 유대인 젤롯당(Zealots)당은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에 무력저항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가와 비슷한 면이 있지요. ”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1:6) ” 주님은 너희 알바 아니라고 무심하고 서운한 대답을 합니다. ”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1:8) ” 너희는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유앙겔리온), 승리의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나라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증인(마루투스- 순교자)이 되라고 동문서답(?)을 말씀합니다.
원래 세상은 부조리 하며 정의롭지 못하게 돌아갑니다. 그런점에서 주님은 딱히 보수 우파가 되라! 혹은 진보 좌파가 되라!.. 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정신… 이해 할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 합니다. 어찌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부조리한 현실 속에 우린 자유를 원합니다. 정의와 평등을 갈구합니다. 주님은 이미 산상수훈에 말씀하셨습니다. 왕이신 주님을 지키려는 제자 베드로에게 칼을 도로 집어 넣으라고 말씀합니다. 솔직히 그런 주님에게 제자들은 매우 실망스럽게 느끼기도 합니다. 주님은 자유, 독립, 민주, 평등, 인권….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들이지만…. 목숨 걸고 사람 죽이면서까지 이데올로기로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 입니다.
우파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 입니다. 보수주의자 입니다. 구약의 질서와 전통, 율법을 무시했기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언약, 율법을 떠난 댓가는 혹독 했습니다. 모세 오경에 예언된 대로 약속의 땅에서 쫒겨났습니다. 포로생활, 전쟁과 기근, 식민지 통치… 신명기 율법의 저주가 그대로 성취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목숨 걸고 보수주의자(conservative)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율법대로 이방인들과 혼인을 금해야 합니다. 가족, 혈통적 가치를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제사의식, 율법과 규례, 절기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외세는 척결해야 합니다. 성전에 이방인이 들어와서도 안됩니다. 나도 거룩, 성전도 거룩, 오직 거룩!… 저소득 이방인들? 상종해서 안되는 인간들이지요. 평등? 약자에 대한 배려? 공익? 가난한 자 소외된자? 사마리아인?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저들은 율법적 저주, 하나님 앞에 버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고보면 나사렛 이단 예수가 하는 말은 모든 질서와 보수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혁명적 발언뿐 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토록 바리새인들에게 진노하고 경멸했을까요? 복음이 아니라 보수주의, 율법적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만의 의과 거룩, 기득권, 특권의식, 우월감, 권력에 대한 의지, 지독한 교만함….. 저 더러운 사마리아 인들, 율법도 안지키는 사람들 때문에… 좌파들 때문에 나라가 망가졌어…. !
우리 주님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매우 혹독하고 잔인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 회칠한 무덤들아 ! 율법이 무엇을 말하더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말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말하면서… 너희들은 하나님의 긍휼, 의과 신, 율법이 말하는 공의는 버렸도다! 매우 인간적이며 선택적 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너희들은 의를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주님은 분노하며 질책합니다. 너희의 의와 믿음은 가짜다 ! 오히려 세리와 창기가 더 하나님 나라에 더 들어가기 쉽겠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우파는 이 말을 절대 이해하지 못합니다. 복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마음이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어떠한 말도 그들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점에서…주님은 보수주의자 우파가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진보주위자 좌파가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식, 복음은 좌파와 우파의 장벽을 허물어 버립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가 되게 합니다. 복음과 정치 이데올로기를 혼동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지만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죽입니다. “자유와 전통”을 지키겠다고 야만적 방식으로 전쟁을 하고, “공정과 평등” 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합니다.
공정, 평등, 약자에 대한 배려, 독립운동…. 좌파적 가치이지만 혁명은 곤란합니다. 자유, 전통, 가족, 보수적 가치… 우파이지만 자칫 바리새인이 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자유 민주주의 라는 정체(political entity) 는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이지만 자칫 “영적 바리새인” 이 될 수 있습니다.
칼로 일어나는 자는 칼로 망한다. 차라리 독실한 힌두교도였던 간디는 예수님의 말씀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그의 정치철학으로 삼았습니다. 간디는 기독교인보다 더 산상수훈을 사랑하고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독실한 힌두교인으로써 복음을 실천합니다. “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가? ” 라고 우리에게 반문합니다.
속지 마십시요. 이데올로기는 복음의 정신이 아닙니다. 좌파 우파는 정치 이데올로기 입니다. 정치철학은 언젠가 변질됩니다. 정치철학으로 세워진 나라는 결국 믿음을 배반합니다. 이데올로기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정신을 거부합니다. 이데올로기는 많은 경우 껍데기 가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파적, 좌파적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으로 부터 독립보다도… 전혀 다른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라 ! 교회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헤롯의 정치는 요한을 죽였고 로마의 정치는 예수를 죽였습니다.
교회와 정치의 거리는 불가근 불가원입니다. 교회는 전적으로 인사이더도 아니며 아웃사이더도 아닙니디. 우파 좌파의 범주에 우리를 집어넣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사라집니다. 교회가 반드시 선지자적 기능을 하려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 다시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에 속지 마십시요. 좌파, 우파… 현실 정치는 우리에게 안정과 보호를 약속합니다. 기독교에 당장 도움이 된다고 손쉽게 붙어버리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됩니다. 결국 세상에 짓밟힙니다. 꼭 지금처럼 !!!
제국의 논리, 힘과 권력, 군사력의 논리…..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교회는 짓밟히고 버림 받았습니다.
권력은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우파가 권력을 잡습니다. 부패하면 부패했다고 다시 좌파가 권력을 잡습니다. 서로 부패한 것을 끄집어 내 다시 권력을 잡습니다. 권력은 참 매력적이며 달콤합니다. 결국 서로 부패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소금이 있어야 세상이 부패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권력이 부패하는 것을 수없이 목도하지 않았습니까?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약속을 믿어야 할까요? 좀더 덜 부패한 권력을 선택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루어야 할까요?
현실 정치에서… 우리의 영성도 마찬가지… 마음에 안드는 양극단이어도 아무리 고상한 이데올로기여도 죽일 정도까지 가면 곤란합니다. 우파(보수)와 좌파(개혁)은 공존해야 좀더 건강합니다. 공존의 가치입니다. 우파와 좌파의 두 날개가 건강하게 공존해야 그나마 균형이 잡힙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야 비로서 좌파, 우파 이데올로기 전쟁, 권력투쟁이 끝나겠지요.
이데올로기는 복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데올로기에 편입되는 순간 하나님 나라 질서는 사라지고, 죽고 죽이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복음의 정신을 저버리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했기 때문에 … 전 국민이 신음하며 고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는… 이데올로기를 구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포로생활 고달파…오늘도 우린 메시야를 기다리며 고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정치와 관계를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12월 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혼돈과 무질서에서 구원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12월 대강절(Advent)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느때보다 주님의 오심을 고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다스림, 통치를 고대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의의 나라, 평강의 나라를 고대하며 기도합니다. 마라나타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밴쿠버동산교회 장천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