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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교회협의회 주관 이재철 목사 초청 교민 부흥회 성료

밴쿠버 교회협의회 주관 이재철 목사 초청 교민 부흥회 성료

밴쿠버지역한인기독교회협의회(회장 김지태 목사, 이하 교협)가 주관한 이재철 목사(전 한국 100주년 기념교회) 초청 교민 부흥회가 지난 5일(수)-7일(금)까지 ‘말씀, 그리고 사색과 결단’이라는 주제로 사흘간 밴쿠버순복음교회(김성준 목사)에서 열렸다. 3일간 진행된 부흥회는 본당 좌석이 가득 찰 정도로 궂은 날씨에도 많은 성도들이 참여하여 함께 예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부흥회에는 시온어린이합창단, The Choir, 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이 특송으로 참여했다. 또한 봉헌 특송으로, 김유신 집사, 윤재웅 목사, 김희은 양이 봉헌특송으로 함께했다. 

이재철 목사는 첫날 출애굽기 12:29-36절 본문, ‘내일은 내일 오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시작이 반이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이 격언은 단순히 시간의 절반(50%)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결단과 용기라는 심오한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고 서론을 전했다. 우리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중, 단 하나를 행동으로 실행한다는 것은 나머지 모든 생각을 포기하는 용기 그 자체이며, 이는 이미 성공을 향한 심리적 동력의 50%를 확보한 것과 같다.

그러나 시작이 완결이 아닌 ‘반’에 머무는 이유는 성실성과 인내력이라는 나머지 50%의 난관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용기지만, 완결하는 것은 성실성이다. 성실성이 결여된 수많은 사람이 중도에 포기하기에, 시작은 완결이 아니라 완결로 가기 위한 절반일 뿐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이라는 긴 노예 생활을 겪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강인한 성실성으로 훈련시키고자 하신 깊은 뜻이었다.

용기와 성실성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시작하는 ‘타이밍’ 이다. 100일이 필요한 일을 99일 동안 미루다가 마지막 날에 시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성공적인 완결은 첫날부터 시작하는 올바른 타이밍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출애굽)과 관련된 모든 핵심 사건은 놀랍게도 ‘밤’에 일어났다. 어린양 피를 바른 시각 ‘해질 때’(예레브), 애굽의 장자를 친 시각 ’밤중’,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을 시작하고 완결한 시각도 ‘밤’이었다.

이는 유대인의 시간 개념에서 해가 지는 시각(밤)이 오늘의 끝이 아닌 ‘내일이 시작하는 첫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미래를 주시면서, 그 시작을 새로운 날의 첫 시간대에 이루도록 명하셨다. 이는 새로운 삶을 얻기 원한다면, 첫 시간부터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새로운 시작의 ‘첫 시간대’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우리의 미래 전체를 결정합니다.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시계로 오늘 밤 12시는 내일이 시작하는 시점 이다. 우리가 막연히 ‘내일 아침’부터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오늘 밤’이라는 ‘내일의 첫 시간’을 허망한 잡담이나 문화로 탕진한다면, 그것은 다가올 모든 시간을 오염시키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미래를 주시기 위해 주님은 새로운 미래의 첫 시간대인 한밤중에 부활하셨다. 우리는 바로 그 주님 안에서 ‘내일의 첫 시간인 오늘 밤’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결단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때 우리의 삶은 우겨쌈을 당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내일을 살게 될 것이다라고 첫날 설교를 마쳤다.

둘째날에는 사도행전 19:20-32절, ‘그대는 어떤 부류의 인간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기원 후 1세기 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였던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은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격렬한 소동을 일으켰다. 이 소동은 단순한 종교적 갈등이 아닌, 말씀의 능력과 배금주의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생존 본능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으로 기록된다고 전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간 머물며 사역을 이어갔다. 유대교인들의 훼방으로 회당에서 쫓겨난 바울은 두란노 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에베소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바울은 말씀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이 사역을 통해 수많은 환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쫓겨나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심지어 바울의 몸에 닿았던 앞치마와 수건을 통해 병이 낫는 이례적인 일까지 발생했다. 이는 바울의 능력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는 말씀처럼, 복음이 모든 것을 이기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 강력한 역사 앞에서 에베소의 마술사들은 자신들의 거짓된 삶을 회개하며 생존 수단이었던 마술 책들을 불태우는 결단을 감행했다. 이 책들의 가치는 무려 5만 드라크마에 달했는데, 이는 노동자의 137년치 임금에 해당한다. 재물을 포기하며 삶의 방향을 전환한 이들의 행동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증명한다.

복음은 곧 ‘도(道, 호도스)’로 불리며 에베소 사회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을 기반으로 한 에베소의 경제 구조를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은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팔아 부를 축적하던 은장색 데메드리오는 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설교하자 위협을 느꼈다. 데메드리오가 동업자들을 선동한 명분은 아데미 신전의 위엄 수호였지만, 그 진정한 동기는 자신들의 ‘이 생업’과 ‘이 영업’이 위태로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즉 배금주의 였다.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분노한 군중은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타고를 붙잡아 야외 극장으로 끌고 갔다. 이 야외 극장은 2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는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소동에 참여한 시민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는 기록이었다. 이는 이성을 상실하고 선동에 휩쓸리는 몽매한 군중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재철 목사는 에베소 소동이 신앙인들이 현실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비추는 네 가지 인간 유형을 제시했다.

1. 바울: 진짜 예수쟁이이다. 자기 희생과 헌신으로 복음의 ‘도’를 걸었으며, 오직 말씀의 힘을 믿고 환난을 돌파했다. 

2. 에베소 제자들: 무늬만 예수쟁이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스승인 바울의 안위, 즉 육체의 안위를 최우선시하며 주님의 섭리를 거스르려 했다. 

3. 데메드리오 일행: 배금주의자이다. 신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재산이 위협받자 거짓 선동으로 타인을 짓밟는 이들이다.

4. 에베소 시민들: 몽매한 군중이다. 악한 선동에 휩쓸려 분노하지만, 자신이 왜 소리 지르는지 그 본질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다수였다.

바울은 이 모든 환난을 통해 로마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확고히 했다. 이 웅장했던 아데미 신전은 결국 268년에 파괴되어 기둥 하나만 남았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의 ‘도’는 시대를 넘어 영원히 살아남았다. 오늘날의 신앙인들 역시 재물이나 육체의 안위를 따지는 가짜가 아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말씀의 도를 걷는 진짜 예수쟁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둘째 날 부흥회를 마쳤다.

마지막날 집회에는 사도행전 6:1-7절, ‘참된교회,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자, 대제사장 무리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사도들을 채찍질하며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지 말라”고 협박했지만, 사도들은 굴하지 않고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교회는 더욱 성장했고, 교인과 헌금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사도행전 6장은 초대교회가 겪은 첫 내적 갈등을 기록한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에 구제 문제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구제 사역을 담당하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자신들과 같은 배경의 사람들만 돌보았고,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은 매일의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 불평을 들은 사도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며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세워 구제 사역을 맡기기로 했다. 교인들은 기쁨으로 순종했고, 스데반, 빌립, 부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등 일곱 집사를 세웠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모두 헬라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는 초대교회 내에서 헬라파 신자들이 신뢰받으며 사역의 전면으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초대교회의 중심은 히브리파에서 헬라파로 이동했다. 교회의 시야는 좁은 민족적 한계를 넘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보편적 교회로 확장되었다.

헬라파 유대인 스데반은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지 않는다”는 설교로 순교했다. 빌립은 사마리아와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며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선교의 길을 열었다. 헬라파 유대인 바울은 지중해 세계로 나아가 복음을 들고 갔다.

사도행전은 히브리파 유대인으로 시작했지만,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적 틀을 깨고 헬라파 형제들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배후에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바울을 살리기 위해 성벽에서 밧줄로 내려준 다메섹의 신자들, 세계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세운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그리고 바울을 후원하며 교회를 세운 빌립보의 간수와 그의 가족들 모두 이름 없이 복음을 위해 헌신했다.

오늘날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이름 없이, 그러나 중심에서 섬기는 신앙이다. 헬라파 유대인을 세운 히브리파의 포용, 그리고 이름 없는 성도들의 헌신이 초대교회를 세계적 교회로 세웠듯, 오늘의 교회 또한 섬김과 희생 위에서만 진정한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 강조하며 부흥회를 마쳤다. 

교협은 오는 12월 5일(금) 오후 7시 써리에 위치한 Pacific Academy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출할지어다!’라는 주제로 밴쿠버 기독한인 찬양대축제를 개최한다. 이번 찬양축제에는 밴쿠버 Youth Kosta 찬양팀과 그레이스한인교회, 밴쿠버중앙장로교회, 성산교회+순복음교회+한인침례교회 연합 성가대가 찬양하며, 메트로밴쿠버남성합창단, 밴쿠버 시온선교합창단이 게스트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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