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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별을 남기고 가신 고 박재훈 원로 목사 천국환송예배 개최

많은 별을 남기고 가신 고 박재훈 원로 목사 천국환송예배 개최

지난 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토론토 큰빛교회 박재훈 원로목사의 천국환송예배가 지난 7일 토론토 큰빛교회에서 열렸다. 천국환송예배는 코로나 19 방역지침에 따라 사전에 신청서를 제출한 인원만 참석하고 실시간 방송(유튜브)을 통해서 예배에 참석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천국환송예배는 노희송 목사(토론토 큰빛교회 3대 담임)가 집례를 맡아 진행했다. 사도신경 후 고 박재훈 목사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를 찬송하고 송민호 목사(토론토 영락교회)가 대표 기도 순서를 맡았다. 이어 고 박재훈 목사의  딸 김순혜 사모, 아들 박기성 목사의 조사를 듣는 순서가 이어졌다.


아들 박기성 목사는 조사에서 “내가 젊었을 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지금 나이가 들어선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게 더 힘들다고 느낀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싸움”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20여년전 아버지를 모시고 부흥 집회를 갔다가 마치고 나오는 중에 젊은 예언자 한명이 아버지에게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며 앞으로 20-25년 동안 열매 있는 삶을 살고 예전에 한것 보다 지금 하는 일이 더 큰 열매를 맺을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 연세가 73이셨다.  그 예언자의 말은 맞았습니다. 그 이후로 오페라를 많이 쓰셨고 더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순수한 신앙을 죽을 때까지 지키셨다. 아버지는 치장하지 않으시고 단순하신 분이셨다. 그분의 마음이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주님 되신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셨다”고 아버지를 기억했다.

이어 “아버지에겐 음악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하나님, 교회, 가족, 대한민국, 캐나다에 대한 사랑이며 언어였던것”이라며 “그 분은 단순하고 순수하게 하나님께 헌신하며 삶을 하나님께 바치셨다. 지난 10년 정도는 아버지의 육체가 짐이 되셨다. 망가진 몸을 가지고 쓰러지기 몇 시간 전까지 음악을 작곡하셨다”고 눈물을 보이며 전했다.

이어 박재훈 목사의 생전 영상과 함께 큰빛교회 성가대가 박재훈 목사가 작곡한 곡들을 조가로 찬송했다. 이날 말씀에는 토론토 큰빛교회 2대 담임이었던 임현수 원로목사가 시33:1, 사 43:21본문을 가지고 ‘100년 찬송의 열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임 목사는 “2주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인해서 우리는 모일수도 없고 장례 예배를 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날짜와 날씨도 완벽할 때 목사님을 불러주셨습니다. 목사님은 99세까지 맑은 정신으로 사시다가 넘어지셔서 딱 이틀 동안 병원에 계신 뒤 3일 만에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박 목사님의 생애를 생각하면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라’는 구절이 떠오른다”며 “박 목사님의 아름다운 노년도 많은 열매를 맺은 종려나무, 향기로운 재목인 백향목과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목사님은 일본 식민통치라는 고달프고 힘든 시기에 태어나셨다. 박 목사님은 생전 민족의 한을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태어나셨다. 한국교회 음악계의 큰 별로 흑암에 앉았던 우리 백성에게 소망을 주셨다. 동요, 합창곡, 찬송가, 오페라 등 수 많은 작은 별도 거느리셨다”며 “남이 도전하지 않는 산지에도 도전하셨다. 하니님은 친히 나이가 아닌 비전에 따라 일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셨다”고 했다.

그는 “박 목사님은 하나님께 일평생 온전한 순종을 하신 분이다. 철저한 사명감에 불탄 인생으로 강력한 정신력을 갖고 사셨고,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심도 남다르셨으며, 하나님 나라를 향산 헌신과 용기가 아주 뛰어나신 분”이라며 “목사님은 6.25 전쟁 고아들을 모아 합창단을 구성하셨다.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동역하셨고 한양대 등에서 교수로 헌신하셨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귀한 일에 동참하셨다”고 했다.

임 목사는 “60살이 넘어선 박재훈 목사님은 캐나다에서 외로운 성도들을 위해 1984년 토론토 큰빛교회를 개척하셨다. 담임목사로 은퇴하신 뒤에도 7년 동안 성가대 지휘자로 섬겨주셨던 겸손한 목회자이기도 하셨다. 항상 예배시간 맨 앞자리에서 설교를 경청하시고 ‘아멘’으로 화답하셨다”며 “모세와 바울처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셨다. 한국전쟁 직후 작곡한 어린이동요 150여 개로 전국의 학생들이 일본동요 대신 부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또한 “작곡하신 여름성경학교 주제곡으로 수 만개 전국 교회학교 아이들이 목청 높이 부를 수 있었다. 60년이 흐른 지금 동요를 부른 아이들은 성인이 됐다”며 “그 밖에 찬송가 800여 곡, 유관순, 손양원 등의 오페라, 수 많은 합창곡을 남기셨다”고 했다.

임 목사는 “내가 목회할 동안 하나님 앞에서 박 목사님과의 어떤 갈등도 겪지 않았다. 왜냐면 그분은 검소한 삶을 사셨고, 욕심이 없는 최고의 인격자셨기 때문이다. 36년 동안 지켜본 박 목사님의 모습은 마음이 맑으셨고, 나 같이 허물많은 사람과의 갈등도 없었으며 모든 것을 예수님처럼 관용하시고 참아주신 성자와 같은 분”이라며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 순간도 잊지 않으셨다. 북한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복음 통일을 애타게 바라셨던 애국자 목사님이셨다”고 했다.

아울러 “오늘 예배 날짜가 내가 북한에서 석방됐던 날이기도 하다. 박재훈 목사님은 나의 석방을 위해 애타게 기도하셨다”며 “많은 선교사들이 박재훈 목사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우리 교회는 박재훈 목사님이 계셔서 3대 목회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 분은 하나님 앞에 불러가셨지만 남기신 보석같은 작품은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후배 목사들이 보내온 영상 조사가 이어졌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는 “박 목사님이 만드신 모든 찬송은 한국교회의 모유식이었다. 박 목사님이 지으신 여름성경학교의 교가로 아이들은 위대한 여름날의 꿈을 꿨다. 잊어버린 양들을 되찾기 위한 전도의 헌신도 주께 드렸으며, 우리 시대 암울한 청년들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며 박 목사님의 찬양을 들었다”며 “박 목사님이 작곡하신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양으로 세월의 감사를 주님께 드렸다”고 했다.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는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아이들이 부를 동요가 없어 한탄하셨던 박 목사님은 우리말에 우리 선율을 얹어 동요를 만드셨다. 그 분은 찬양의 사람이셨다. 우리 민족이 만든 찬송 가운데 아름다운 것들 모두가 박 목사님의 삶에서 우러나온 찬양이었다”며 “에스더, 유관순, 손양원 등 박 목사님이 작곡한 오페라를 통해 민족의 슬픔 속에서 소망을 일궈내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다.

문성모 목사(강남제일교회 담임)는 “박 목사님은 내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다. 언제나 목사님을 볼 때마다 감동과 교훈을 얻었다. 목사님처럼 살다가는 것이 내 소원 이었다”며 “마음 속으로 존경하다 오페라 ‘손양원’을 직접 보기 위해 한국에 방문하신 박 목사님을 직접 만나 뵌 적이 있다. 박 목사님 전기를 쓰고 싶어 직접 요청 드렸고 흔쾌히 허락하셔 2013년 책을 냈다. 또한 3.1운동에 관한 오페라 대본도 직접 부탁하셔서 쓴 게 ‘함성 1919’였다. 목사님은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그 삶은 영원히 우리 뇌리 속에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기균 지휘자(경성대학교 교수)는 “이웃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곡을 끝까지 쓰셨다. 수많은 찬송가, 오페라 등 수많은 곡을 작곡 하셨으며 제가 어떻게 이렇게 작곡하실 수 있으셨냐고 여쭤보면 하늘로 두 손을 들고 ‘그분이 하신거시다’ 라고 말씀하신게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어 국영순 교수, 조성준 장관(온타리오주 노인 및 장애인 복지부 장관), 김운성 목사, 한 홍 목사의 영상이 조사로 이어지며 고인을 그리워하며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영상으로 대신했다. 

고 박재훈 목사 천국환송예배 :(토론토큰빛교회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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