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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풀교회 창립 10주년 기념 노승환 목사 초청 부흥회 개최

조이풀교회 창립 10주년 기념 노승환 목사 초청 부흥회 개최

조이풀교회(김영남 목사)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며 지난 19일(금)부터 사흘간 노승환 목사 초청 부흥회를 개최했다. ‘복음’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부흥회는 첫째날은 ‘복음의 원수들과 그 형식’, 둘째날은 ‘참된 의와 참된 쾌’, 셋날짤은 ‘왜 꼭 십자가여야만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다. 

첫째날 집회는 누가복음 15:11-32절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노 목사는 “갈리디아서 2장 말씀을르 보면 바울이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복음의 진리를 따라가지 않는 베드로를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영적으로 잠깐 방심하니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못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렇듯 베드로가 그러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부분이 너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의 자연스런 본성과 어긋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교를 시작했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못하면 율법주의나, 반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방심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복음으로 누릴 수 있는 능력, 기쁨을 빼앗겨 버립니다. 복음은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상상하고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타락하고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선언하면서 반율법주의를 깨뜨립니다. 또한 복음은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 용납되었고 사랑받고 있다고 선언함으로 율법주의를 깨뜨립니다.” 라고 전하며 복음은 어느 한쪽도 아닌 중간에 낀 무엇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 ‘길’, ‘진리’라고 강조했다.

“율법주의, 반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은 모두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고 내가 주인되고자 하는 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내가 잘하면 상받고, 내가 잘못하면 벌 받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아주시고 인정하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여 내가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관계가 동기가 되어서 성령을 간절히 의지하게 되고 그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지며 고통이나 안좋은 일이 생기면 나를 탓하고 우울함에 빠지게 되며 불평하게 되는데, 복음의 진리를 받은 사람은 어떤 역경이 있을때 십자가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받은 벌을 십자가에서 이미 해결해 주셨다 생각하며 이 고난이 나를 훈련시키고 단련시키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함으로 이겨냅니다. 반율법주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과 죄를 우습게 여기는 성향을 반율법주의라고 합니다. 율법주의의 기준이 ‘공의’라면, 반율법주의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는 3가지의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번째 잃어버린 한마리 양, 두번째 열 드라크마(동전), 세번째 돌아온 탕자의 비유입니다. 오늘 본분을 보면 돌아온 둘째 탕자가 돌아 왔을 때 큰 아들은 화를 내며 아버지에게 ‘내가 여러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긴 일이 없거늘’ 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불평은 재산 때문 일 겁니다. 오늘 비유에서보면 큰 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비유하며 율법주의자를 상징하고, 작은아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비유하며 반율법주의자를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의 포커스는 둘째 아들보다는 첫째 아들에 있고 첫째 아들(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둘을 다 품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에 관한 메시지 입니다 15:20절에 보면 멀리서 돌아오는 탕자를 보고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추셨다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멀리서 내가 오는 그 모습을 보고 달려 오셔서 나를 끌어안고 내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먼저 살피고 그 마음을 먼저 드리는 것이 참된 신앙일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복음은 ‘GOODNEWS’ 로 뉴스라는 형식으로 전해졌습니다. 복음의 형식이 중요한 이유는 들려지는 형식에 따라서 내가 무엇을 근거로 삼아서 행동하게 되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내가 충고나, 훈계, 경고나 명령으로 받으면 뉴스로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 내 삶의 행동의 근거가 됩니다. 뉴스는 이미 벌어진 일을 알려주는 행위입니다. 그 벌어진 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뉴스의 반응의 정도는 나와의 어떤 연관이 있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집니다. 복음은 나의 영혼과 관련된 뉴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 소식을 아무에게나 들리고 믿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 겁니다. 그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며 첫날 집회를 마쳤다. 

둘째날 집회는 복음의 가장 핵심인 하나님이 누구이시고(존재)와 어떤분(속성)이신지에 대해서 말씀을 이어갔다. 노 목사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이단종교에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한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삼위일체에서 ‘위’는 ‘Person’을 말하는 것이고 체는 몸이 아니라 ‘본체’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Three Person in Nature 이라고 합니다. 세 인격이 한 본질을 가지고 있고 그 영광과 권능은 동등합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 할수 있겠습니까? 이건 신비의 영역으로 분명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그 신비의 영역을 전부 알수 없고 설명 할 수 없습니다. 그 신비의 영역은 그냥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이 이런분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od is Love) 요한일서 4:8,16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 된 속성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단들이 말하는 ‘단일실론, 양태론, 삼신론’을 믿으면 하나님의 기본 된 속성이 사랑일수가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관계적인 개념입니다. 혼자하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각 독립적이고 구별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서로 친밀한 관계 가운데 완벽하게 하나로 묶여 모든 것이 풍족한 그런 존재이십니다. ‘복음’은 그런 관계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삼위의 다이나믹한 사랑의 관계 가운데 인간을 초청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강요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로인해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다시 그 사랑의 자리로 초대해 주신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되면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면서 자기중심적인 성향에서 점점 타인을 배려하고, 온유하고, 친절하게 되고, 베풀게 되면서 점점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 회복하게 됩니다. 이런 회복이 시작되면 우리에게 참된 의와 참된 쾌(기쁨)가 세워지게 됩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최고의 엘리트 스펙을 가지고 있는 사도바울이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제대로 된 관계를 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해야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주로 생각하는데, 물론 틀린말은 아니지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의’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회개해야 할 것은 죄뿐만이 아니라 나의 의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의’라고 하는 개념은 의롭다, 착하다 라는 개념보다는 관계적인 개념(righteousness) 입니다. ‘참된 의’는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만이 나를 의롭게 할 수 있고 하나님과의 제대로 된 관계를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쾌는 세상의 기쁨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며 하늘의 기쁨을 맛본 사람들이 세상의 쾌락을 자연스럽게 거부하는 것이 복음의 사람들입니다. 참된 기쁨을 아는 자가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함이 계속해서 만들어 집니다. 두번째는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는 동기는 예수를 닮고자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이 모든 것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됩니다.”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참된 의와 쾌가 무엇인지 점검해 보길 바란다고 전하며 집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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