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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3_제자는 이런 사람이다(눅 14:25-35) 

제자는 이런 사람이다(눅 14:25-35)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그 물건이 가진 고유한 가치, 특성이 있습니다. 만일 물건이 그 가치를 잃업버리면 더 이상 물건으로서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가르침에 등장한 ‘소금’의 가치는 짠맛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린다면 소금으로서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땅의 거름으로도 사용할 수 없어 밖에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34-35절) 

오늘날 기독교는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질적으로 좋아졌습니다. 좋은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도 들을 만족시키며 교회를 안정적이게 성장시켜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회의 건강한 성장과 부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아니 오히려 교회가 비대해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왜일까요? ‘제자’는 없고 ‘무리’ 가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오병이의 기적에서는 무려 5000명이나 되는 무리 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옆을 지켰던 사람들은 120명이었습니다. 

우리는 무리에 속하는 5000명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옆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120명 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는 제자로서의 분명한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 제자는 바른 우선순위가 있습니다.(26-27절)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의 목숨도 포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를 제거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는 개인의 목적과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무리들 속에는 예수가 아닌 ‘나’가 중심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나’가 없습니다. ‘나’를 제거하고 ‘예수’가 중심이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그리스도인의 제자훈련]에서도 보면 제자도의 주된 특징은 그리스도의 ‘주인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권리를 부인하는 동시에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값으로 산 존재이기에 우리의 삶의 소유권이 전적으로 주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중심이 되어 살아갈 때에 주님을 위해 삶의 모든 열정을 집중하게 됩니다. 이 길이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길이지만 ‘예수’가 함께 하는 길 이이게 고난도 기쁨도 함께 누리게 되며, 주님으로 만족한 인생이 됩니다.  

둘째, 제자는 삶으로 나타납니다.(34-35) 

단순히 스승을 따르는 것이 제자가 아닙니다. ‘무리’들도 예수와 동행했습니다. 무리와 제자는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후안까를로즈 오트티즈 목사님은 그의 책 [제자입니까]에서 ‘무리는 눈 앞에 유익을 몰려드는 사람들이지만 제자는 자신에게 가르쳐준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서 삶을 실천하고 그 내용을 누군가에게 또 다시 전수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즉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머리에 드는 지식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행함,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권면하셨습니다. 움직이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는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며 또한 예수님을 전하는 자 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순절의 열 다섯번째 날입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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