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 예배의 한계, 교회는 다시 모이고 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교회 연구가이자 컨설턴트, 교회 리더들을 지원하는 사역 기관인 처치앤서스(Church Answer)의 설립자이자 CEO인 롬 레이너 목사의 기고글인 ‘성장하는 교회의 새로운 현실: 온라인(디지털) 예배의 피로'(A growing church reality: Digital worship fatigue)를 최근 게재했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레이너 목사는 다수의 책을 출간했으며 40년간의 목회 경험을 밑거름 삼아, 개교회와 교회 리더십의 영적 성장과 건강을 위해 실제적인 자료와 컨설팅을 제공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팬데믹이 닥쳤을 때, 전 세계 교회들은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예배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예배당은 텅 비었지만, 라이브 스트리밍과 줌(Zoom) 예배가 성도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한동안 그 변화는 거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온라인 사역을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던 교회들이 갑자기 지역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일부 목회자들은 기록적인 수치를 보고하기도 했다. 조회 수는 수백, 수천 회에 달했고, 설교 영상은 주(州) 경계를 넘어 해외로까지 퍼져나갔다. 흥분감이 교회를 가득 채웠고, 많은 이들은 “이것이 교회의 새로운 표준이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그 열기는 식어버렸다. 온라인 예배는 여전히 도구로서 남아 있지만, 더 이상 같은 활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예배 참여율은 떨어지고, 교인들의 몰입도는 약해졌으며, 많은 성도들이 ‘디지털 교회’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한때 생명선이었던 것이, 이제는 부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디지털 예배 피로(Digital Worship Fatigue)”라고 부른다.
온라인 예배의 하락세
팬데믹으로 교회 문이 닫히자, 온라인 예배는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목회자들은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시간 방송을 송출하며, 새로운 플랫폼을 배우느라 분주했다. 그 시기에는 꽤 잘 작동했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은 온라인 참석자가 대면 예배 인원보다 더 많았다고 보고했다. 당시의 생각은 단순했다: “이게 미래다.”
그러나 지금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르나(Barna)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대면 예배를 선호하며, 온라인 교회는 “보조적 수단” 정도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
신선함은 사라졌다. 2020년에 혁신적으로 보였던 것이 2025년에는 공허하게 느껴진다. 한때 수천 명의 조회 수를 자랑하던 목회자들은 이제 조용히 남은 소수의 참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쉽게 시작하고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소비 중심의 디지털 교회 문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진실은 명확하다. 온라인 예배의 폭발적 성장은 혁명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디지털 대체물에 지쳤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다시 모이는 것이다.
화면은 성소를 대신할 수 없다
온라인 예배에도 분명 가치가 있다. 그러나 화면은 결코 예배당을 대신할 수 없다. 라이브 스트리밍은 설교나 찬양, 기도를 전달한다. 그러나 예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예배는 육체적이며 공동체적인 경험이다.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기도의 공기를 느끼며, 하나님 앞에 모이는 그 물리적 행위 자체가 예배의 본질이다.
화면은 이런 요소들을 대부분 제거해버린다. 음악을 ‘볼’ 수는 있지만, 찬양으로 가득 찬 공간의 진동을 ‘느낄’ 수는 없다. 설교를 ‘들을’ 수는 있지만, 말씀 앞에 함께 마음을 모으는 공동체의 무게를 ‘경험’할 수는 없다.
공동체성도 약화된다. 대면 예배에서는 복도에서의 우연한 대화, 따뜻한 포옹, 눈빛의 교감이 가능하다. 온라인 예배는 이런 ‘거룩한 순간들’을 대신할 수 없다.
교회에 직접 발걸음을 옮기는 행위 자체도 중요하다. 교회에 들어서는 것은 이렇게 선언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만나러 왔습니다.”
반면, 파자마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예배를 ‘시청’하는 것은 그만큼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한동안 디지털 예배는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거룩한 공간의 부재’는 많은 성도들의 영적 깊이를 얕게 만들었다. 결국 스크린은 성소를 대신할 수 없는 연약한 대체물이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이 정확하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화면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성전은 필수적이다.
디지털 예배의 가장 큰 적: 산만함
디지털 예배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하다. 집중력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예배당에서는 산만한 요소가 제한되어 있다. 전화가 울릴 수도, 아이가 움직일 수도 있지만, 공간 자체가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집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초인종이 울리고, 강아지가 짖고, 세탁기 알람이 울린다. 설교 중에 문자가 뜬다. 예배는 수많은 다른 소리들과 경쟁해야 한다.
게다가 화면은 본질적으로 ‘주의 분산의 유혹’을 담고 있다. 온라인 예배는 여러 브라우저 탭 중 하나일 뿐이다.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SNS를 스크롤하거나, 뉴스를 보는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온라인 시청자는 몇 분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예배는 ‘배경음’으로 전락한다. 마음을 다해 말씀과 기도, 찬양에 참여하는 대신, 사람들은 드문드문 들어오고 나간다. 어떤 이는 “오늘 설교에서 용서에 대한 부분이 좋았어요”라고 메시지를 남기지만, 사실은 단 몇 분만 시청했을 뿐이다.
산만함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을 훼손하는 문제다. 마음이 집중되지 않으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편리함이 낳은 안일함
온라인 예배의 장점은 분명하다: 편리하다. 리모컨을 클릭 몇 번이면 거실, 차 안, 심지어 해변에서도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 병중이거나 여행 중이거나 외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다.
그러나 편리함은 대가를 요구한다. 처음에는 임시방편이었던 온라인 예배가 점점 대면 예배의 ‘대체재’가 되어버린다. 건강한 신자들조차 “그냥 집에서 볼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예배가 편의성의 문제로 바뀌면, 헌신은 약해진다. 교회는 더 이상 삶의 중심이 아니라, 여가와 일정 사이에 ‘시간이 나면 하는 일’이 된다.
이 현상은 단순한 출석률 저하를 넘어선다. 헌금은 줄고, 봉사는 감소하며, 리더십을 맡는 사람도 줄어든다. 온라인 예배 참여자들은 대부분 ‘관람자’로 머무른다. 결국, 편리함은 안일함을 낳는다.
클릭 한 번이 ‘참석’이 되고, 화면 속 설교가 공동체 교제를 대신한다. 교회는 ‘함께하는 공동체’에서 ‘소비하는 콘텐츠’로 변질된다.
디지털 예배는 ‘보조 수단’, ‘대체 수단’이 아니다
디지털 교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사역의 유용한 도구다. 문제는 그 사용의 방향이다. 온라인 예배는 대면 참석이 어려운 사람들인 고령자, 병자, 여행자 등에게 유익하다. 또한, 신앙을 탐색하는 사람에게는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통로가 된다. 그러나 온라인은 시작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영구적 대체재’로 여기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스크린은 신앙의 장기적 성장을 감당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보완적’ 접근이 필요하다.
온라인을 활용하되, 성도들을 다시 공동체로 불러들이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을 주일 예배 외의 제자훈련, 소그룹, 묵상 자료 제공 등으로 확장하면, 인터넷은 피상적 편리함이 아닌 ‘영적 깊이’를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의 본질은 여전히 ‘모이는 것’이다. 디지털은 교회의 팔을 넓히지만, 결코 심장을 대신할 수 없다.
진짜 예배는 ‘현존’이다
디지털 예배 피로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를 상기시키는 표지다. 예배는 콘텐츠가 아니라 공동체이며, 소리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지는 행위다.
교회는 디지털 도구를 버릴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예배의 본질을 대신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모든 답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다” (시 122:1)
그 기쁨은 스트리밍으로 전달될 수 없다. 그 기쁨은 함께 모일 때, 살아 숨 쉬는 예배로 경험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