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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교도소 선교이야기]  홈이 그리운 사람들

 홈이 그리운 사람들

한 사람이 거리의 작은 벤치에 누워있다. 가끔 하늘도 바라보고 바람도 느끼면서 그는 햇살아래 누워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듯하다. 그리고 영원히 그곳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편안한 자세로 침묵을 지킨다. 그를 처음 만났던 곳은 가석방자의 집에서였다. 교도소에서 살아간 세월이 사회안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은 사람… 그 사람은 말한다. 홈이 그립다고 그리고 홈이 그리울때면 이 벤취에 누워 고향을 생각한다고.  마우리 원주민 말, 투란가와이와이 (Turangawaewae)는 , ‘서 있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영혼이 힘을 얻고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그 곳이 바로 자신들의 삶의 기초요 자신들의 홈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꿈을 꾸듯 바라보고자 하는 곳도 홈이 되고, 가슴이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곳도 홈이 된다. 원주민으로 살아온 ‘그’는 자신이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태어나 자란 곳을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를 만난 날은 유난히, 따사로운 날이었다.  혼자서는 이제 산책이 자유스럽지 못한 건강샹태, 그러나 햇살아래 걷고 싶어하는 그를 위해 산책길에 나섰다. 얼마 걷지 않아 작은 공원앞 벤취에 앉아야만 했다. 그는 다시 자신을 찾아와준 동물 친구들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거의 일년간 비슷한 스토리로 시작이 되고 끝이 난다. 출감하여 첫번째로 머물렀던 가석방자의 집에 있을때 스컹크와 다람쥐, 새가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이야기, 그래서 지금도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한 양식을 준비한다는 이야기, 어린시절 원주민 마을에 살때 곰을 만나 곰과 대화 나누었다는 이야기등을 반복하는 그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보인다. 함께 있어도 혼자인듯 외로운 사람들 곁으로 스며들어와 늘 함께 하는 애완동물들이 가정에 늘어나고 있음을 본다. 애완 동물이 허락이 안되는 공동체 건물에 살아서일까  그의 방에 들어서면, 큰곰 작은 곰, 여러 동물 모양의 인형들을 소개받곤 한다. 그에게 인형은 하룻길을 동행해 주는 동무들이다. Belonging…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가슴의 소리를 나눌수 있는 관계, 하나님의 창조의 숨결로 부터, 엄마의 탯줄로부터 시작된 만남이기에 사람은 이토록 영의 소통을 갈망하는 것일까? 

우리가 앉아있는 거리의 벤치로 한 여성이 큰 개와 함께 다가왔다. 난 이 형제가 그들을 너무 반가와하며 말을 걸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며 그냥 사람이 그립구나 생각했는데, 산책하는 그녀는 그가 지내고 있는 곳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개와 산책을 마친 그녀가 떠나가자 그는 갑자기 작은 벤치에 눕는 것이었다. 고향이 너무 그리울때마다 홀로 이곳에 나와 누워 본다고 했다. 10대에 고향을 떠나 떠돌다 교도소에서 생활한지 몇십년, 그리고 가석방… 그 사이 고향에 가본적도 없는 그가, 부모님을 몇십년동안 만나지 못한채 부모님 별세를 맞이했던 그가 고향집이 그리워 벤치에 눕는다는 말이 가슴에 박혀 잠시 할말을 잃고 쪼그리고 누워있는 그를 바라만 보았다. 그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부탁을 했다. 고향이 그리울때 이곳에 누워 취했던 포즈를 보여 달라고… 그는 말없이 이리저리 누우며 포즈를 취해 주었고, 나는 그를 조용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가족과 지냈던 그의 인생의 기간은  10여년이란 세월이 전부, 화평과 돌봄이 있었던 홈도 아니었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은 고향일텐데, 그가 영으로 ‘서 있는 그곳’에서 그는 자신만이 알고 연결되어 있는 ‘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홈’ 그 자체가 주는 깊은 소속감과 그리움, 그것은 우리 삶의 체험 너머의 존재의 본질인듯 그렇게 우리를 오늘도 끌어당기고 있나보다.

지금 그는 복음을 신학적,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받아 들이지 못한다. 우리의 섬김을 만남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낄뿐이다. 그를 방문하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커뮤니티 채플린도 상담사도 아닌, 함께 걸어가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영육간 필요에 민감한 친구로 이웃으로 그를 만나오고 있다. 영육간 보살핌을 주고픈 목자의 마음과 그의 좋은 이웃으로 그를 만난다. 이 만남속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 (고후 8:9).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자유로이 풀어지고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는 정말 자신을 가난케 하여 다른 이들을 부요케 하는가 뒤돌아보게 하시는 주님의 마음과의 만남이 있는 바로 그곳… 그 홈에서 시작되고 끝날 인생길에서 만나는 홈이 그리운 사람들… 우리의 삶의 한 조각들이 저들의 ‘투란가와이와이’가 되어 줄수 있을까?  홈이 있어도 돌아갈수 없는 가석방자들, 평생을 교도소에서 살다가 이 땅의 삶과 이별할 수감자들, 용서와 화해가 없어 달려가 서로 안아볼수 없는 자녀와 부모관계가운데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갇힌 자들과의 동행길이, 진정한 홈 되시는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길이 되길 구할때, 기억이 흐려져 가는 한 가석방자와의 만남의 벤치에 아름다운 하늘 햇살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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