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칼럼:원주민이해하기]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4 – 기숙학교 3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4 – 기숙학교 3

 기독교가 어떻게 기숙학교 설치에 앞장서게 되었을까? 

최근에 기숙학교를 경험한 원주민 장로들을 만나보면 기독교와 성경과 예수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며, 대표기도를 부탁하면 형식에 맞춰서 곧잘 하시곤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적개심과 증오, 트라우마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럽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여러 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하게 된다. 1867년 영국이 캐나다를 건국했을 당시 가장 큰 이슈 중에 하나가 캐나다 내 야만인(실제로 Savage라고 기록됨)들을 어떻게 문명화 시킬 것인가 였다. 정부는 재정적인 여력이 되었으나 인력이나 실제적인 행정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로마 카톨릭은 나폴레옹의 박해에 반발해 교황권 지상주의를 다시 강조하던 시기였다. 교황권이 세속 권세와 공의회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이었고, 교황청는 선교를 통하여 이 혼란함을 타개하려 했다. 기독교는 1517년 종교개혁 이후 2세기 간 잠잠하다가 1694년에 독일의 할레대학에서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영향은 모라비안들에게 이어졌으며 이후 웨슬리선교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선교의 열정이 전 세계를 뻗어 나가게 되었다. 카톨릭의 정치적 야욕과 개신교의 경건주의가 선교의 배경이 되었으므로 선교에 있어서도 다른 문화에 대하여 수용적이기보다 교정하고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정부와 기독교는 서로 손을 잡고 캐나다 땅에 기숙학교를 세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볼 때, 기숙학교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문명화 방법이요, 선교의 방법이라는 교집합이 형성되었고, 이에 정부의 지원 아래 기독교는 기숙학교를 경쟁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독교는 캐나다의 기숙학교가 식민주의와 동화주의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원주민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확신했었다. 교회는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기독교로 개종(선교)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원주민의 영적 어두움을 물리치고 토착 영혼을 구하고 그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데리고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기숙학교나 교회 교육을 통하여 원주민 어린이에게서 “인디언 물”을 모조리 빼내어서 “문명화”하고 유럽-캐나다 사회로 통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원주민의 언어를 근절하고 영어와 불어 읽기, 쓰기 및 기타 기술학문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원주민 어린이를 그들의 가족과 지역사회로부터 강제로 분리시켜 기숙학교에 수용함으로써 원주민 사회를 쉽게 통합할 것이라고 믿었다. 원주민 어린이를 유럽-캐나다 문화, 관습 및 가치에 동화시키는 것이 곧 주류사회에 성공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교회는 서구식 교육과 직업 훈련을 전수함으로써 장차 원주민 어린이들이 일자리를 얻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이며 더 나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기숙학교 설립이야말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후대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원주민 어린이를 선교 대상으로 삼을 때 교회가 원주민 공동체 내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 나열된 혜택이 원주민의 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이를 말살해야 한다는 차별적 가정에 근거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숙학교 시스템에서 원주민 어린이의 실제 경험한 것은 문화적 억압, 성적 학대, 폭압, 트라우마, 언어 상실, 정체성 상실, 지역 사회와의 단절이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사랑이 없이 문화적 이원론에서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긍정적일 수 없을 것이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