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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나들목칼럼]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밥심으로 사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오늘 우리에게 떨어지지 않는 끊기지 않는 양식, 우리가 없어서 불안해거나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충분하고 만족할만한 양식이 바로 우리에게 구하라 하신 일용할 양식입니다. (케네스 E.베일리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참조)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은 겨우 끼니를 연명하는 최소 정량을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삶의 필요를 넉넉히 채움받고, 그 격려와 힘을 바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기도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일용한 양식을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e.g., 잠언 30장의 아굴의 기도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둘째, ‘나에게’가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헬라어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로 되어 있습니다. 양식을 구하는 주체가 내가 아닌 우리임을 강조합니다.

광야의 만나는 아무리 많이 거두었을지라도 다음날이면 썩고 맙니다. 그래서 광야의 백성들은 항상 만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출16:17-18). 더 많이 거두어봤자 남기면 다 썩으니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이 그렇습니다. ‘일용한’을 넘어서 혼자 다 갖으려 하고 승자독식의 잔인함으로 무장하여 결코 나누려 하지 않으면, 내게 넘치는 양식은 결국 썩은 만나가 되고 맙니다. 썩은 것은 먹으면 먹을수록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오천명 먹을 것을 혼자 먹게 되면 그것을 성공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영혼은 평생 썩은 걸 먹는 겁니다. 그 영혼이 어떻게 탈이 안 나겠습니까? 날마다 신선한 양식을 먹기 위해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혹 그 이상으로 넘치게 주시는 것은 나누어 먹는 삶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림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대표적 판화가 이철수라는 분은 직접 땅콩 농사를 지으며 이런 글을 썼습니다.
“땅콩을 거두었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된 놈! 덜 떨어진 놈!”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욕심과 욕망을 놓지 못해 썩은 것을 먹는 덜된 놈, 덜 떨어진 놈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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