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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창수 목사의 희년이야기] 노동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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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George Webster on Pexels.com

노동과 기도

지난 1999년 봄, 나는 강원도 태백의 수도 공동체인 예수원에서 3개월 동안 지원훈련을 받았다. 예수원 본당에는 “노동하는 것은 기도요, 기도하는 것은 노동이다”라는 표어가 붙어있었다.

당시 예수원의 교육책임자였던 한 자매님이 “노동이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맡겨진 일을 빨리 끝내고 쉬려 하지 말고, 일하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일하면서 동시에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실제적인 조언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조언대로 예수원에서 건축이나 농사 같은 작업을 할 때나 주방에서 설거지할 때,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거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은혜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3개월이 지나 귀경한 지 얼마 후에, 당시 내가 섬기던 희년 사역 단체의 사무실에서 회지를 발송하는 작업을 했다. 큰 봉투에 받는 이의 주소가 프린트된 라벨을 붙이고 그 안에 회지를 집어넣어 봉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 양이 수백 통이었다.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지루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빨리 해치우고 쉬자”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때는 예수원에서 배운 대로 작업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손으로는 봉투에 주소 라벨을 붙이고 그 안에 회지를 집어넣으면서 동시에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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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봉투에 받는 이의 주소가 프린트된 라벨을 붙이는 내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 봉투가 그 라벨 주소대로 가는 것처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라.” 

그리고 그 봉투 안에 회지를 집어넣는 내게 주님은 또 말씀하셨다. 받는 이에게 그 봉투 안의 회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처럼, “가서 내가 네게 말하는 것을 너는 그에게 대언하라.” 

그런데 이 말씀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비슷하다. 

렘 1:7,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그 단순 반복의 지루할 수 있는 노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가 되었다. 일하면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더니, 노동이 기도가 되었다. 그 노동의 기도 가운데, 나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비록 그 비좁은 사무실은 수백 통의 발송 작업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내 영혼이 느끼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 가득 찼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사한 사무실에서 회지 제작을 위한 편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역 초기에는 몇 해 동안 사명감 하나만 가지고 무급으로 또는 거의 무급으로 섬겼었는데, 그 날은 수중에 돈이 떨어져 돌아갈 버스비만 있었다. 점심을 굶고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했다. 그 당시 나는 굶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돈이 다 떨어져 굶어야 한다면, 대범하게 “금식 기도하는 시간으로 삼으면 되지 뭐”하고, 돈이 없다 하여 안절부절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 4시쯤 되었을까, 멀리 부산에서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밤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박창수 형제에게 돈을 보내라고 내게 말씀하셨습니다.”고 하시면서 내게 계좌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그 분은 거액을 입금하셨다. 그때 나는 그 분에게 감사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진실로 나의 아버지시구나!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다 보고 계시고 다 아시는구나. 나의 형편을 아실뿐만 아니라 그것을 책임져 주시는구나!” 

그때 사무실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임재로 가득 찼다. 사무실은 내게 하나님과 함께 거한 성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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