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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년 이야기] 삼일운동과 평양의 그리스도인들

body of water during golden hour

Photo by Sebastian Arie Voortman on Pexels.com

삼일운동과 평양의 그리스도인들

1919년 3월 1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삼일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바로 평양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오후 1시). 그리고 그 장소였던 숭덕학교 교정은 바로 장대현교회 앞마당이었다. 이에 비해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은 시간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평양에서는 베드로전서 3장 13~17절과 로마서 9장 3절을 낭독했는데, 그 요지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민족을 사랑하여,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요컨대 삼일운동은 평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독립선언서 낭독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지금 한국 교회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민족을 사랑하여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려는 정신이 살아 있는가?

이 정신은 한마디로 십자가 정신, 희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 정신이 죽어버렸다면 한국 교회 역시 죽어버린 것이며, 우리는 참으로 부끄러운 후예들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민족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희년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희년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가?

“평양의 독립선언식은 3월 1일 오후 1시에 시작됐다. 숭덕학교 교정에 연설대를 설치하고 그 주변에 평양 지역 목사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가 둘러앉은 가운데 참석자는 약 3,000명에 달했다. 전 광무황제 이인의 봉도식(奉悼式)을 겸한 자리인 만큼 먼저 제4교회 목사 강규환이 죽은왕의 역사를 설명했다. 

이어 제5교회 목사 김선두가 나와 「 베드로전서」 3장 13~17절과 「로마서」 9장 3절을 낭독했다. 「베드로전서」는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오. (…)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는 내용, 「로마서」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순서인 「기미독립선언서」 낭독을 맡은 것은 제4교회 조사(助事) 정일선이었다. 낭독이 끝난 후에는 연설대 뒤편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고 참석자들에게는 소형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경찰이 들이닥쳐 태극기를 빼앗으며 해산을 종용했지만 뭇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경찰이 물러간 후 시내를 향한 행진이 시작됐다. 외국 선교사들이 앞에 선 비교적 평온한 행진이었다.”(권보드래, 283쪽).

“보다 본격적인 시위는 저녁에 있었다. 숭덕 교정에 재집결했을 때는 “벌써 등불이 걸리고 군악대가 울렸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학생의 말을 빌면 “선두에는 군악대, 숭실대학, 그 다음이 평양고보 그리고 또 광성, 숭실…… 이제부터 행렬을 지어 시가로 행렬……”, 이런 호령에 맞춰서 문통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시민들도 등을 내걸고 행렬 맞이할 때마다 만세를 외쳤다. 노래도 불렀지 싶다. 낮의 행사 때도 한목소리로 독립 창가를 합창했던 터다. “반도 강산아/ 너와 나와 함께 독립만세를 환영하자/ 충의를 다해서 흘린 피는/ 우리 반도가[sic] 독립의 준비이다/ 4,000년 이래 다스려 온 우리 강산을/ 누가 강탈하고 누가 우리 마음을 변하게 할 수 있으랴/ 만국 평화회의에서의 민족자결주의는/ 하늘의 명령이다/ 자유와 평등은 현재의 주의인데/ 누가 우리 권리를 침해할 쏘냐”는 가사였다고 한다. 곡조는 찬송가 곡조를 차용했다. 악대를 선두에 세운 군중은 의기충천했다. 당시 평양고보 학생이었던 함석헌은 훗날까지도 “대열을 해산키 위해 행진해오던 군대(71연대)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향해 평양고보 악대를 앞세워 행군하던 감격은 잊을 수 없다”고 그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권보드래, 283-284쪽).

참고문헌

권보드래, 『3월 1일의 밤』(파주: 돌베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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