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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희년 이야기] 가난한 사람을 위한 부채 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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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을 위한 부채 탕감

구약 성경은 이자 없이 돈이나 양식을 꾸어간 가난한 사람이 그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형편일 때는, 제7년인 안식년에 그 모든 빚을 탕감해 주라고 명령한다. 이와 같이 “안식년이 되면 가난한 사람이 진 모든 부채를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의 대표적인 본문이 신명기 15장이다. 

신 15:1,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매 칠 년 끝”은 제7년인 안식년을 가리킨다. 그리고 “면제하라”는 것은 문맥에서 ‘빚을 탕감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면제’로 번역된 히브리어 ‘쉐밋타’의 동사형은 ‘솨마트’인데, 그 중요한 뜻은 ‘해방하다’(release)이다. 이어지는 신명기 15:2-3에서 ‘솨마트’가 두 번 사용되는데, 제7년 안식년에 ‘사람을 해방하여 빚 탕감을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출애굽기 23장의 안식년 본문인데, 여기서는 제7년 안식년에 ‘땅을 해방하여 쉬게 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출 23:11, “갈지 말고”, 솨마트). 

이처럼 제7년 안식년에 ‘땅을 해방하여 쉬게 하라’와 ‘사람을 해방하여 빚 탕감을 하라’에 동일한 히브리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안식년에 ‘땅을 쉬게 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의 빚을 탕감하는 것’이 동일하게 ‘해방’의 정신을 담고 있다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안식년에 땅을 쉼 없는 농사로부터 해방하여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가난한 사람을 빚의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요컨대, 안식년의 정신은 땅과 사람 모두에 대한 해방과 안식이다.

신 15: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여기서 ‘독촉하다’로 번역된 ‘나가쓰’는 단순히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를 끌고 가서 종으로 부리면서) 압제하다’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가쓰’는 애굽의 바로가 감독들을 통해 히브리인들을 종으로 부리면서 압제할 때 그 감독들에 대해 사용된 단어이기 때문이다(출 3:7; 5:6, 10, 13, 14). 따라서 안식년 부채 탕감은 단순히 빚을 없애 주는 차원이 아니라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노예 해방의 차원이 있는 것이다.

안식년에 모든 채권자는 가난한 히브리 사람이 진 모든 빚을 탕감해야 한다.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거나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를 끌고 가서 종으로 부리면서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면제로 번역된 ‘쉐밋타’의 중요한 뜻은 해방이다. 곧 여호와를 위하여 해방을 선포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와를 위하여’(라아도나이)라는 말씀은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이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고 했다면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자를 위하여’로 표현되지 않고 ‘여호와를 위하여’로 표현되었다. 왜 ‘여호와를 위하여’일까? 여기에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빚을 지고 나서 그 빚을 갚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며 괴로워할 때 하나님도 함께 고통을 느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가난한 사람이 좌절하지 않도록 그 마음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데, 이를 위해 마음을 크게 쏟으시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신다. 예수님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의 일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사역이며, 그 가운데 특히 가난한 백성을 위해 더욱 마음을 쏟으시고 노력을 기울이시며 돌보시는 사역이다. 이는 마치 목자의 일이 바로 양들을 돌보는 것이며, 그 가운데 특히 힘없고 약한 양들을 위해 더욱 마음을 쏟고 노력을 기울여 돌보는 것과 같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빚을 갚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가난한 백성의 고통을 함께 느끼시며 그가 좌절하지 않도록 도우시며 일하신다. 

그러므로 제7년인 안식년에 가난한 사람이 진 빚을 모두 탕감하여 그 가난한 사람에게 해방을 주는 것은, 빚을 갚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그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시며 그를 위해 마음을 쏟으시고 노력을 기울이시며 돌보시는 하나님께도 해방을 드리는 것이 된다. 그래서 안식년의 빚 탕감은, 빚을 갚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자 또한 그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시며 그를 돌보시는 여호와를 위하여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해방하는 빚 탕감을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위한 해방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 14:31).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그 가난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시고,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신다. 곧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을 해방하는 빚 탕감을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위한 해방으로 받아들이시기 때문에, 이 신명기 15장 본문에서 모세는 여호와를 위하여 해방을 선포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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