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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년 이야기] 부채 탕감의 자세

man and woman near grass field

Photo by Văn Thắng on Pexels.com

부채 탕감의 자세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가난한 사람에게 꾸어줄 때의 자세를 세 가지 말씀하신다. “반드시” 꾸어주라. “넉넉히” 꾸어주라.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고 꾸어주라. 곧 빈민 대부의 자세는 ‘반드시’(신 15:8, 10), ‘넉넉히’(신 15:8),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신 15:10)이다.

이와 같은 성경의 기술은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가난한 사람의 절박한 사정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를 내세워 가난한 사람에게 꾸어준 빚을 탕감해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성경도 빚을 꾸고 나서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형편인데도 안식년이 올 때까지 갚지 않고 버티면서 떼어먹는 자는 악인이라고 분명히 비판한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 37:21). 이처럼 성경도 악인들이 안식년 빚 탕감 제도를 악용하는 것과 같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그 문제보다 훨씬 더 중시하는 것은 바로 빚을 꾸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가난한 사람의 절박한 사정이며, 또 꾸어 간 빚을 갚으려고 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궁핍한 형편 가운데 채권자로부터 빚 독촉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야 하는 가난한 사람의 괴로운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년 빚 탕감 제도를 악인들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제정하신 것이다. 

시편의 시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라고 하면서 악인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어서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라고 노래한 후에, 다시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 37:26)라고 노래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의인의 자손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도 시인처럼 가난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래서 빚을 꾸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가난한 사람의 절박한 사정을 주목하여 빚을 꾸어주고, 또 꾸어 간 빚을 갚으려고 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궁핍한 형편 가운데 채권자로부터 빚 독촉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야 하는 가난한 사람의 괴로운 마음을 헤아려 꾸어준 빚을 탕감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가족의 수술비나 대학 등록금이나 생계비 등이 급히 필요하지만 그 돈을 빌릴 수 없어서 곤란에 처한 가난한 사람에 대해, 일정 기간 후에도 꾸어간 사람이 도저히 갚을 수 없을 경우에는 탕감을 해야 한다고 각오하고, 자기 재정 지출의 한계 안에서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은 소액을 꾸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사업 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자기가 사는 집을 담보 잡히거나 해서 거액을 꾸어주는 것은 결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의 긴급한 생계 자금을 위해 돌려받지 않고 탕감해 주어도 괜찮은 소액을 꾸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보증을 서는 것은 성경이 금하므로, 보증은 절대 서지 말아야 한다. 

신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여기서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라는 말씀은 얼핏 보면 그 앞의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 15:4)는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말씀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라는 말씀은 인간 세상의 불완전성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곧 사람의 장애나 질병이나 부상이나 나태나 전쟁이나 권력자들의 불의한 수탈이나 가뭄이나 홍수처럼 인간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에 비해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은, 그와 같은 인간 세상의 불완전성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그치지 않겠지만, 안식년 빚 탕감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한 자가 없게 될 것이니, 안식년 빚 탕감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난한 자가 없게 되는 희년 세상을 만들라는 뜻이다. 그래서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라는 말씀을 “아,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을 테니, 가난을 해결하려고 하면 안 돼. 가난은 해결할 수 없어.”라고 숙명론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 반대로 가난이 발생하는 현실과 그 원인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안식년 빚 탕감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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