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나사로(2)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자색 옷을 입었다. 그런데 당시에 자색 옷은 초고가의 왕복이었다. 따라서 이 부자는 왕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집에는 대문이 있다. 이것은 그의 집이 대저택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요컨대 이 부자는 대저택에 살고 있는 왕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대지주라는 사실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당시 갈릴리의 분봉왕인 헤롯과 그 왕족들은 갈릴리의 최대지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처럼 대지주인 이 부자의 반대편에 그 이름이 나사로인 한 거지가 있다. 그는 병든 몸으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한다.
여기서 ‘거지’라는 말은 경제적 측면에서 아무 재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철저히 무력해져서 아무 권력도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반대편의 부자가 경제적 측면에서 대토지와 대저택과 막대한 재물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왕과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과 대조적이다. 성경 본문의 텍스트에서도, 또한 현실 세계의 콘텍스트(역사, 사회)에서도, 한 사람의 경제력은 그 사람의 정치권력과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게 마련인 것이다.
한편에는 왕처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토지와 대저택을 소유한 부자가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어떤 권력도 없고 어떤 재물도 없이 병든 거지 나사로가 누워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이야기가 너무 익숙하고 또 오늘날에도 이런 상황이 온 세계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므로, 이런 상황이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뒤틀린 상황인지 잘 깨닫지 못한다. 희년 경제법이 실현된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가난 때문에 땅과 집과 자유를 잃고 가족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가난한 사람들이, 제50년인 희년이 오면 잃어버린 땅과 집과 자유를 되찾고, 헤어진 가족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그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희년에 땅을 되찾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땅을 물려받아 경작하는 이 ‘희년 경제 체제’에서는, 일시적으로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자기 품을 팔아 살아가는 품꾼은 생길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그 자손의 자유를 영구히 팔아넘기는 노예나 거지는 결코 생길 수 없다. 곧 모든 사람이 평등한 자유민으로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희년 경제 체제는 ‘희년 정치 체제’의 기반이 된다. 희년 정치 체제는 1인 독재 왕정(王政)과 소수 대지주 귀족정(貴族政)을 모두 거부한 채,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섬기는, 평등한 자유민의 12지파 분권적 연합 체제이다. 그런데 이 희년 정치 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땅을 물려받아 경작하는 희년 경제 체제이다. ‘평등한 자유’와 ‘분권적 연합’을 알맹이로 삼는 ‘희년 민주주의’(Jubilee Democracy)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토지 평등권인 것이다.
토지 평등권이 짓밟히면 민주주의도 무너지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토지 불평등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아 있을 뿐, 알맹이는 찾아볼 수 없다. 평등한 자유민에 의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지 평등권이 회복되어야 한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희년 경제법이 무너진 반(反)희년 세상의 참상을 폭로하고, 그런 세상에서 향락을 누려온 반(反)희년의 부유한 권력자들에게 장차 내세에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한다. 그리고 모세와 선지자들이 외친 희년 경제법을 들으라고 촉구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루 속히 반(反)희년 세상을 희년 세상으로 변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