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과 보아스의 기업 무르기(9)
룻 4:1-2, “1.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성문 앞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넓은 장소로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에서 각 성읍이 중요한 문제를 의결하거나 성읍 사람이 제기한 송사의 판결을 내리던 장소였다. 우리 시대로 하면 시군구의 의회나 재판정에 해당한다. 보아스는 이 성문의 위로 올라가 앉아 자기보다 엘리멜렉 가족에게 더 가까운 친족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성문 위에 함께 앉기를 청하고, 베들레헴 성읍의 장로 열 명도 증인으로 청한 후에 그 친족에게 말한다.
룻 4: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땅을 팔았으므로).”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에서, “팔려 하므로”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팔았으므로”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어지는 4절에서 ‘기업 무르기’가 나오는데, 기업 무르기는 가난한 사람이 땅을 판 후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레 25: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는 토지 무르기 규정처럼, 토지를 무른다는 것은 토지를 되산다는 뜻으로서 그 전에 토지를 팔았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 전에 토지를 팔지 않았다면 지금 토지를 무를 필요도 없고, 무를 수도 없다. 따라서 룻 4:3을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았으므로”라고 번역해야 그 다음에 이어지는, “토지를 무르라”는 보아스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게 된다.
둘째, “팔려 하므로”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크라’는 접미동사인데, 구약성경에서 접미동사는 80%가 과거로 해석되므로(권성달, 성경 히브리어 울판 (서울: 도서출판 목양, 2009), 70), 이 경우에도 과거로 해석될 가능성이 80%로 매우 높기 때문이다.
셋째, 엘리멜렉 가족의 기업인 땅은 엘리멜렉 가족이 다시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므로, 그들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가면서, 그 땅을 팔고 떠나는 것이 팔지 않고 떠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룻 1: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라는 나오미의 탄식에 나오는 ‘풍족하게’와 ‘비어’의 뜻에는, 베들레헴을 떠나기 전에는 남편과 두 아들이 함께 있었지만 베들레헴에 돌아온 지금은 죽고 없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직후 룻이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이삭줍기에 나서는 것을 볼 때, 떠날 때는 경제적으로 풍족했었지만 돌아온 지금은 궁핍하다는 의미도 들어 있는데, 여기에서 떠날 때 경제적으로 풍족했었다는 것은 땅을 판 값을 가지고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이유로 3절의 “팔려 하므로”로 번역된 것을 “팔았으므로”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엘리멜렉의 소유지’는 ‘엘리멜렉의 땅’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소유지’로 번역된 히브리어 ‘사데’는 ‘소유’라는 뜻 없이 단지 ‘들’이나 ‘밭’과 같은 ‘땅’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며, 또 ‘소유지’라는 번역이 ‘땅은 사람의 것’이라는 사상을 담고 있는데, 이런 사상은 “토지는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한 레 25:23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3절은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땅을 팔았으므로”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