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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의 교육명령] 가정에서 다시 시작된 종교개혁 3부작/ 제2편. 신앙전수의 종교개혁 – 루틴으로 다시 세우다

가정에서 다시 시작된 종교개혁 3부작

제2편. 신앙전수의 종교개혁 – 루틴으로 다시 세우다

  루터의 개혁은 강단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진짜 개혁은 식탁 위에서 시작되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루터는 가족과 제자, 그리고 손님들을 식탁에 초대했다. 그곳에서는 교리문답이 오갔고, 신학 논쟁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삶과 말씀의 대화가 흘러나왔다. 그의 아내 카타리나는 식탁을 차리고, 아이들은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루터는 성직자 이전에 한 남편이었고, 한 아버지였다. 그의 식탁 위에서 복음은 ‘가르침’이 아니라 숨결이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루틴으로 다시 세운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규칙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다. 루터처럼, 말씀이 일상의 공기처럼 흐르는 삶의 질서를 세운다는 뜻이다.

“면벌부의 교회”에서 “루틴의 교회”로

  루터는 ‘면벌부의 교회’를 향해 반박문을 붙였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다른 면벌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정도 예배면 괜찮다”,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니 신앙생활을 했다”는 마음의 면죄부다. 이것은 신앙이 아닌 신앙의 환상이다. 예배는 ‘주일 한 번’으로 축소되고, 말씀은 ‘강단의 소리’로만 들린다. 그러나 신앙은 루틴 속에서 만들어진다. 루틴 없는 신앙은 습관을 잃은 영성이다.

  D6가 말하는 ‘루틴’은 단순한 시간 관리가 아니다. 그것은 신명기 6장의 네 때의 리듬 — “앉았을 때, 걸을 때, 누웠을 때, 일어날 때” 그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일상 개입이다.

네 때(4T)의 루틴, 신앙의 순환

  루틴은 곧 삶의 예배 구조다. 하루의 움직임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만드는 생활 리듬의 신학이다.

1T : 앉을 때(집 안에서의 대화) — 가족이 함께 앉아 오늘 하루를 나누며 말씀을 듣는다. 이때 성경은 이론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가 된다.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구나.”

2T : 걸을 때(길 위의 신앙) — 출근길, 학교 가는 길, 또는 산책길에서 삶과 신앙이 연결되는 ‘이동의 묵상’이 일어난다. “이 길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3T : 누울 때(쉼의 신앙) — 하루를 정리하며 감사로 마무리하는 시간. “오늘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부모의 축복기도가 아이의 마음에 새겨지는 시간이다.

4T : 일어날 때(새 출발의 신앙) — 하루를 여는 첫 문장이 “하나님, 오늘도 나를 사용해 주세요.” 이렇게 시작된 하루는 그 자체로 예배다. 

  이것이 바로 루틴의 신앙 구조, 루터의 탁상담화가 오늘의 가정예배로 이어지는 길이다.

루틴은 신앙을 ‘기억하게’ 만든다

  신앙은 사건이 아니라 기억이다. 회심은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지만, 신앙의 성장은 반복을 통해 자리 잡는다. 하루의 작은 루틴은 믿음의 기억 장치다.

  루터의 시대에는 성경을 개인이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씀을 백성의 언어로 돌려주라”고 외쳤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손에 쥐고도, 그 말씀을 삶의 언어로 옮기지 않는다.

루틴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루의 루틴이 쌓이면, 신앙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결국 정체성이 된다. 그 기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신앙전수의 개혁이 완성된다.

부모의 첫 제자는 자녀다

  D6의 철학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부모의 첫 제자는 자녀다.” 교회는 부모를 ‘가정의 첫 목회자’로 다시 세운다. 그 순간,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고, 아이의 질문이 신학이 되며, 밥상의 대화가 예배가 된다. 부모의 기도, 용서, 사과, 눈물이 아이에게 복음이 된다. 복음은 전수되는 말이 아니라, 흘러내리는 삶이다.

루틴이 교회를 다시 세운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그럼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교회의 사명은 단순하다. 가정의 루틴을 돕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줄이고, 루틴의 밀도를 높이는 일. 하루 한 번의 말씀, 주일 한 번의 예배, 그 두 가지가 다시 연결될 때, 가정과 교회는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루터는 교회를 개혁했지만, 그 개혁은 가정으로 흘러들어왔다. 오늘 우리는 반대로, 가정에서 시작된 개혁이 다시 교회를 새롭게 해야 한다. 

하루 10분의 기적

  한 가정이 하루 10분만 함께 말씀을 나눈다면, 그 시간은 단순한 큐티가 아니라 가정의 부흥회가 된다. 식탁에 놓인 성경 한 권, 그 위에 손을 얹고 함께 기도하는 순간, 그 가정은 이미 ‘작은 비텐베르크’다. 루틴은 거창하지 않다. 작지만 지속적인 순종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큰 결심보다, 매일의 작은 충성을 기뻐하신다.

다시, 식탁에서 시작하라

  오늘도 수많은 교회가 세대를 잇기 위해 고민한다. 하지만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밥상 위, 하루 10분, 한 번의 질문. 그것이 개혁의 시작이다. 루터가 문 앞에서 못질했다면, 우리는 식탁 위에 말씀을 못질한다. 그 못질 하나가 다음 세대를 세우고, 그 못질 하나가 교회를 다시 일으킨다. “이제 개혁은 성문이 아니라, 루틴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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