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이야기] 희년의 예언자, 이사야(8)
사 58:4,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라는 말씀은, 권력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금식하는 날에조차 그날 하루 동안 쉬게 해 주어야 할 종들에게 힘든 일을 무리하게 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곧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라는 말씀은, 부채 노예를 부리는 권력자들이 금식일의 노동이 부당하다고 항변하는 히브리 노예들을 윽박지르며 폭언을 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라는 말씀은, 단지 폭언으로 끝내지 않고 히브리 노예들을 주먹으로 치면서 폭력까지 행사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 히브리 노예들은 그 날이 민족의 금식일이라는 이유로 그들도 금식을 강요당한 채 굶주린 배를 안고 부유한 권력자들이 시키는 힘든 노동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 58: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모든 사람이 일을 쉬고 안식하며 진심으로 회개해야 할 금식일에, 돈벌이를 위해 히브리 종들에게 온갖 일을 시키고, 이를 위해 히브리 종들을 윽박지르며 악한 주먹으로 치면서 하는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될 수 없고, 이런 금식일은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는 날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은 회개의 표현이다. 그러나 금식일에 돈벌이를 추구하고 히브리 종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기 위해 히브리 종들을 윽박지르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불의를 자행하면서, 겉으로만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고 뉘우치는 회개가 결코 될 수 없다.
또 이런 금식일은 “여호와께 열납될 날”도 될 수 없다. 여기서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란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날이라는 뜻인데, 이 ‘여호와께 열납될 날’(욤 라촌 라아도나이)은 이사야 61:2에서 희년을 뜻하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쉐나트-라촌 라아도나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두 구절은 ‘날’(욤)과 ‘해’(쉐나트)만 서로 다른 단어이지, 다른 단어들은 개역개정 성경에서 ‘여호와께 열납될’과 ‘여호와의 은혜의’로 달리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에서는 ‘라촌 라아도나이’로 똑같다. 곧 ‘여호와의 은혜의 해’란, ‘여호와께 열납될 해’와 같은 뜻으로서,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해를 의미하며, 바로 희년을 가리킨다.
레 25:9-10에서, 이 희년은 속죄일에 선포된다. 곧 ‘여호와께 열납될 해’는 ‘여호와께 열납될 날’에 선포되는 것이다. 만약 속죄일에 ‘여호와께 열납될 해’를 선포하지 않으면, 그 속죄일은 더 이상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 될 수 없다. 또한 속죄일을 포함하는 금식일에 ‘여호와께 열납될 해’를 선포하지 않으면, 그 금식일은 더 이상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 될 수 없다. 금식일이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 되려면 반드시 ‘여호와께 열납될 해’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희년 정신을 실천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반(反)희년의 악행을 일삼으면서 금식하는 날을 어찌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에 담긴 뜻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은, 희년을 실천하면서 자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금식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