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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창수 목사의 희년이야기] 기도와 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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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George Webster on Pexels.com

기도와 공의

지난 1987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개최된 <나라를 위한 연합 예배>는 1만 명의 광주 그리스도인들이 진보 교단과 보수 교단을 가리지 않고 하나로 연합하여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한 집회였다. 그 연합 예배는 역사적으로는 광주에서 6월 항쟁을 여는 중요한 도화선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개인적으로는 내 인생과 신앙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그 날은 5월 24일 일요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내가 다닌 교회는 광주 양림교회(예장 합동)로서 보수 교단에 속했다. 그 날 오전 주일 예배 후에 광고가 있었다. 전 교인이 <나라를 위한 연합 예배>에서 성가대로 섬기기 위해, 오후에 금남로에 있는 광주 YMCA 강당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교회 어른들과 함께 그 연합 예배에서 부를 찬송가 “어느 민족 누구게나”를 열심히 연습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성가대복을 입고 금남로로 걸어갔다. 경찰 오토바이 몇 대가 소리를 내며 우리 옆을 따라 왔다.

우리는 집회 시작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YMCA 강당 앞에 도착했는데, 전경들이 출입구를 몇 겹으로 에워싸고 아무도 들여보내 주지 않은 채, 최루탄 몇 개를 눈앞에서 터뜨렸다. 전경들은 끝까지 출입구를 열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전남 도청 앞 분수대 앞에서 도청 쪽을 보면서 금남로의 차도 위에 앉았는데, 집회에 참석한 인파의 맨 앞이었다. 분수대와 우리 사이에는 전경들이 몇 겹으로 진을 치고 서서 분수대 광장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 분수대 광장은 1980년 5·18 당시에 시민 집회가 열렸던 곳으로, 5·18의 상징적 중심지였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노상에 앉았는데, 분수대 바로 앞에서 광주 은행 사거리까지 차도 위에 빼곡하게 앉았고, 전경들은 전면인 분수대 앞과 후면인 광주은행 사거리에 서서 집회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으며, 왼쪽과 오른쪽의 측면은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인도에 서서 우리를 둘러쌌다. 아마 1980년 5·18 이후 광주 도심에서 모인 최대 인파였을 것이다. 집회가 시작된 후, 성가대인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찬송가 “어느 민족 누구게나”를 합창했다. 가사 한 절 한 절이, 한(恨)이 서린 역사의 무게를 담은 간절한 기도였다.

이어서 광주에서 가장 큰 교회이자 보수 교단에 속한 광주 중앙교회의 담임 목사였던 변한규 목사가 설교했다. 그는 식탁 한 개를 가져다가 단상으로 삼고 그 위에 올라가서 “아벨의 피”에 대해 설교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설교를 기억하고 있다. 아벨이 가인에게 살해당한 후에, 땅에 흘려진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했다는 말씀을 하시며, 지금 살해당한 박종철 군의 피가 하늘의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고 온 힘을 다해 외치셨다. 우리 모두는 울었다. 전경들이 터뜨린 최루탄 때문에 눈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 말씀 하나 하나가 가슴을 후벼 팠다. 

이 <나라를 위한 연합 예배>는 당시 중앙 언론과 지방 언론 모두 사회면에서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 연합 예배를 개최한 단체인 ‘광주기독교선교자유수호위원회’의 전신은, 1980년 5·18 당시의 ‘기독교비상구호위원회’였다. 진보 교회들과 보수 교회들이 연합하여 만든 기독교비상구호위원회는 5·18 사상자와 실종자와 구속자의 가족을 돕기 위해 노력하다가 1981년 11월, 광주기독교선교자유수호위원회로 전환했다. 이 단체가 바로 1987년 5월에 <나라를 위한 연합 예배>를 주최했는데,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광주의 14개 교단이 가입했다. 그리고 이 단체의 위원장이었던 김채현 목사는 바로 내가 속한 광주 양림교회의 담임 목사였는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직을 맡아 이 연합 예배를 개최한 것이다.

이 연합 예배에 참석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최루 가스로 가득 찬 도로 위에서 남도의 따가운 5월의 햇살 가운데 눈을 들어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했다. 보수 교단과 진보 교단의 광주 그리스도인 1만 명이 모두 하나가 되어 드린 그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얼마 안 있어 6월 항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체육관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대통령을 계속 뽑겠다는 전두환 군사 정권의 4·13 호헌 조치를 철회시키고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연합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진보와 보수라는 분열의 장벽을 넘어 공의(公義)를 위해 연합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수업 중에 담임선생님이 전날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본 연합 예배와 그리스도인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공의를 위해 역사적 책임을 다하고자 애쓰는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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