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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성령 (4), 그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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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4), 그 품격

수 세기 동안 인간은 우주에 관해 연구를 거듭해 오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을 통합한다 해도 존재하는 것의 극소량에 불과하다는 표현이 적합합니다. 그 이유는 창조물인 인간은 활동과 사고가 시공간에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물질 세계 넘어에 영 (Spirit) 으로 존재하며 활동하는 하나님의 신성과 행동 그리고 성품은 모호하며 어렴풋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그분에 관하여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며 그분을 숭배하도록 자신을 계시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라고 밝힙니다. 하나님의 삼위 중 하나인 성령에 관해서도 성경은 매우 정밀하게 정보를 제공합니다. 성령의 본성과 행동을 나타내는 몇가지 품성을 소개합니다.  

   첫째, 성령은 영원의 품성(eternity)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14는 성령을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라고 표현합니다. 이 한 문장 속에는 한 분 하나님의 세 위격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위대성을 증거하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위가 모두 관여하신 것입니다. 영원하신 성령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흠이 없는 그리스도 (성자 그리스도)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습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아들은 자신의 생명을 받쳤고, 아버지는 받쳐진 아들을 받으시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성령이 집행합니다. 항상 존재한다는 “영원성”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 모두에게 부여된 말입니다. 이사야는 이 진리를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 (하나님)가 나의 영 (성령)을 그 (그리스도)에게 주었다”고 표현합니다. 성령은 존재하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이 이 사실을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표현합니다.

   둘째, 성령은 전능한 품성 (omnipotence)이 있습니다. 전능이란 모든 것이 가능한 능력이며 제한이 없는 무한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직임을 시작하실 때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라고 먼저 선언하시고,  자신을 통해 행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를 전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데려 오는 각종 병자를 고쳐 주시고 약한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귀신들려 눈 멀고 말못하는 환자도 고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적대하자,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며, 능력의 공급처는 성령임을 밝힙니다. 이 성령은 처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는 능력이었으며, 주님의 은혜를 전파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각종 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출처였으며, 또한 죽은지 삼일이 지난 나사로를 살리신 무제한의 능력이었습니다. 

   셋째, 성령은 편재의 품성 (omnipresence)이 있습니다. 성령은 동시에 세상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사람의 삶에 임재하십니다. 성령의 존재와 섭리는 모든 피조물 속에 있는 무소부재의 성품입니다. 다윗은 성령의 편재에 관한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은  무한하고 무제한적입니다. 사람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지만,  성령은 언제나 우리가 있는 그 어느 곳에도 함께 계십니다.

   네째, 성령은 전지 (全知)의 품성(omniscience)이 있습니다. 전능한 능력으로 어떤 제한도 없이 우리 삶에 임재하시는 성령은 또한 우리를 아는 지식에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생각의 계획을 사람들 앞에 숨기고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숨겨지지 않습니다.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전지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편의 저자는 성령은 우리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밝히 아시고 우리의 모든 길과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계속하여 우리가 하는 생각과 하려는 말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성령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는 앞뒤로 나를 둘러싸고 계십니다. 주는 주의 손으로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 이것을 안다는 것는 내게 너무도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 지식은 내가 알기에는 너무도 깊고 오묘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만물을 꿰뚫어 보시는 성령은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속속들이 아십니다. 삶의 어려운 기로에서 혼란을 겪을 때, 우리 삶에 임재하신 전지의 성령은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훤히 밝혀주십니다.  

   다섯째, 성령은 무한한 품성(infinite)이 있습니다. 성령과 인간의 정신을 비교할 때 확연히 드러나는 성령의 속성은 무한성입니다. 인간은 창조되었습니다. 성령은 창조자 하나님의 한 위격입니다. 인간은 유한적이기 때문에 삶 전체가 제한적입니다. 성령은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시는 무한적입니다. 우리는 시간, 공간, 자원, 힘, 지식, 등 모든 것에 제한을 받습니다. 성령은 그 어느 것에도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성령의세계와 인간의 범위를 이사야는 이렇게 비교합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거대한 바닷물을 조금한 컵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유한한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 무한한 성령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섯째, 성령은 열매 맺는 품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하며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자연적으로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열매로 번역되는 희랍어 “카르포스”는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생산물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행동에 의해서 맺어지는 카르포스는 인간 영혼에 제일 완벽한 상태와 풍요로움 그리고 기쁨을 뜻했습니다.  과일로 번역되는 영어 프룻 (fruit)은 라틴어 프루이 (frui)에서 유래되었는데,  “즐거움을 제공하다” 혹은 “기쁨을 갖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우리 삶에 맺게 하는 달콤한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성경은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라고, 성령은 현재 우리 삶에서 일하고 계심을 알립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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