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오만함 (2) 창조주와 인간 멸시의 태도

pink pencil on open bible page and pink

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오만함 (2) 창조주와 인간 멸시의 태도

하루는 막내 자만(自慢)이 형 교만을 만나 자신의 재능에 관한 자랑을 한껏 늘어놓습니다. 주변에 자신의 재주를 따를 자가 없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자랑 일변도입니다. 자만은 겸손함을 잃고 도를 넘어 자기 자신의 우수성을 과시합니다. 동생의 말을 듣던 교만(驕慢)은 자만이 갖고 있는 자만심에 더하여 기만과 속임의 재치까지 겸비해서 자만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교만은 자만이 넘볼 수 없는 현혹적인 말들로  자신을 높이고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봅니다.  교만은 말과 태도로 단칼에 막내 자만을 굴종시킵니다. 이 때 세째인 거만(倨慢)이 끼어듭니다. 그는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기 위해 남들을 자신과 비교합니다. 악한 말로 상대되는 사람을 험담하고 비방하며 자신의 우수성을 밝힙니다. 교만은 형 거만의 말에 기가 푹 죽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큰형 오만이 가까이 옵니다.  그는 자세부터가 동생들과 다릅니다.  신의 경지에 오른 자신 앞에  인간은 모두 파리에 불과하다며, 자신들을 포함하여 인간을 경멸하는 오만이 형에게  동생들은 기분이 상해  분이 치밀어 오릅니다. 오만은 과대망상으로 인간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말과 행동으로 인간을 천시합니다. 

      오만함을 뜻하는 희랍어 “후브리스”는 인간이 하나님을 잊고 사악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기술하는 단어입니다.  오만함 속에는 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진리의 제우스 신은 오만한 자를 심판한다 ”고 믿었습니다. 스펄전은 시편 1:1절을 설명하면서 “복 있는 사람”이 “오만한 자리”에 앉으면 않되는 이유를 이렇게 적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는 매우 높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곳은 지옥의 문에 아주 가깝다. 거기로부터 속히 달아나자!” 이제 신약성경에서 사용되는 오만함의  용례와 의미를 살펴 봅니다.    

   첫째, 오만함은 신체적 손실과 재산을 잃을 때 사용됩니다.바울을 호송하던 배가 이탈리아로 항해를 시작할 때 바울은 뱃사람들에게 충고합니다. “여러분, 계속해서 항해를 하다가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배와 짐만 손실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잃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무시한 그들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곧 항해를 출발했습니다. 그 결과 배는 유라굴로라는 거대한 폭풍을 만나 수 일 동안 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표류합니다. 거센 바람과 물결 속에 사람들은 희망을 잃습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지도 못하고 기진맥진할 때 바울이 외칩니다. “여러분, 내가 크레타 섬을 떠자지 말자고 한 말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손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고 물건을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손실”과 “잃어버림”으로 번역되는 후브리스는 오만함을 피함으로 유익을 얻는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둘째, 오만함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의 일종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이 죄는 인간 관계에서 합당치 못한 행위로 공동체의 기준을 무너뜨려 결국 사회를 와해시키는 중범죄입니다. 신앙  “집회의” 혹은 “교회의” 책이라 칭하는 『집회서』에는 오만함은 “주님과 사람 앞에 혐오스런 것으로 그것은 양자에게 심판 받게 되는 불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바울은 마음이 타락한  인간이 범하는 죄의 목록을 열거할 때 오만함을 포함시킵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거리는 자요, 중상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꾸미는 모략꾼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신의가 없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 그는 이와 같은 인간의 사악한 행위는 ”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셋째, 오만함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교회와 하나님을 대적했던 방항적 모습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나는 그리스도를 욕하고 핍박하며 온갖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괴롭혔습니다.” 이곳에서 오만한 자, 즉 후브리스는 그리스도인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으로 번역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자신의 야만적인 태도를 기술하기 위해 오만함을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상처받고 굴욕당하는 것을 마땅한 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넷째, 오만함은 복음전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자들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 두 사도에게 악감을 품게합니다. 그러자 패가 갈라지면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지도자들과 한 패가 되어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며 돌로 쳐죽이려 했습니다.” 이곳에 사용된 “핍박하다”는 오만함의 동사형인 “후브리조”를 번역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했던 핍박의 종류를 설명할 때 “후브리스”를 적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 (후브리스)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그를 적대하는 세력들로부터 돌에 맞아 큰 상처를 입고 쓰러져 죽음과 같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바울은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옷을 찢김 당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 쇠고랑을 차기도 했습니다.    

   다섯째, 오만함이 지닌 전체 의미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예는 왕의 아들 결혼 잔치 이야기에 나타납니다. 왕은 소와 살진 송아지를 잡아 웨딩 연회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왕은 종들을 보내 초대받은 사람들을 모으게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초대에 응하지 않고 제 각기 자신들의 길로 갑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왕의 종을 모욕하고 핍박하여 죽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종들을 학대하고 모욕한 행동이 히브리제인입니다. 이 단어 속에는 죄의 본질이 있습니다. 

   왕의 아들 결혼 잔치는 죄로 인하여 부패되고 타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을 세상에 보내어 그들을 구원의 길로 초청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초청을 경시합니다. 심지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을 핍박하고 죽입니다. 그들의 악한 행동의 근본 원인은 인간 내면의 오만입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인간의 마음이 희랍어 후브리스입니다. 오만함은 인간이 자신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사실을 망각하여 의지적으로 자기 자신을 높여서 하나님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오만함은 그로인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동료 인간의 마음을 짓밟게 만드는 멸시의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양심을 통하여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있습니다. 죄는 하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만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나쁜 소식은 우리로 복음의 좋은 소식을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이남규 목사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