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의, “의로운 사람”

pink pencil on open bible page and pink

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의, “의로운 사람”

혼인을 개인의 일이 아닌 가문의 문제로 여겼던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는 장남이 죽게 되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런 대계결혼 (Levirate marriage, 繼代結婚)은 가문의 장자권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홀로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장 제도였습니다. 유다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다말과 결혼한 장남이 죽자 둘째가 그녀와 살다가 그도 역시 사망했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 “막내 아들이 아직 어리니 그가 어른이 될 때까지 너희 집에 가서 기다려라”고 했습니다. 셋째가 어른이 되었는데도 자신에게 그를 주지 않자, 다말은 얼굴을 분장해서 시아버지를 유혹해 동침하는 패륜을 행합니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유다는 며느리를 향하여 “네가 나보다 더 의롭다”고 고백합니다. 유다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다말이 자신보다 가족 관계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의”는 윤리나 도덕적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상대방을 위해 각자가 책임지고 있는 특정한 사항을 충족시키는 것이 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을 살려준 다윗을 향하여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고 말했습니다. “의롭도다”는 사울의 말은 다윗은 군신관계에 자신의 책임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도 근본적으로는 그분의 백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계약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이뤄집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쌍방 간에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관계에서 하나님의 충족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사항도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였습니다. 이 언약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의 삶을 구원하여 거룩한 백성 삼는 것이고, 이스라엘은 율법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이 사항들을 행할 때 각자는 의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모든 행위를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그 의는 하나님 자신의 내적 본성과 조화되는 행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권선징악의 결과로 정의를 드러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대신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충족성의 이행입니다. 그리하여 의는 종종 구원, 구원하는 행위, 구원의 도움, 의로운 도움, 승리, 번영, 복수, 은혜와 자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와 언약에 신실하신 성품과 관련됩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의의 성격을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고 표현했습니다. 

   인간 편에서 요구되는 “의”의 요소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므로 언약이 요구하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매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도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그 속에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땅 위에 사람들의 악한 행위가 가득 찼기 때문에 홍수로 모든 생물을 쓸어 버리지만, 노아의 가족은 살아남게 하시겠다는 언약입니다.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던 노아에 관해서 성경은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합니다. 노아를 의로운 자로 그리고 완전하자로 불렀던 원인은 그가 도덕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바른 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의가 무엇인지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는 사회 지도자인 바리새인이고 다른 하나는 죄인 취급받던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똑바로 서서 자신은 불의나 간음 같은 죄를 짓지 않고 규칙적으로 금식 기도하고 십일조 하는 신앙인인 것에 감사합니다.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마친 후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 (세리)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가 종교 지도자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정의로와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믿음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그를 의인으로 칭했던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의로운 층에 속했던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실 때에,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세를 주었소”고 추궁합니다. 예수님은 두 아들 예화를 들어 의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아버지가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말하자 처음에는 거절했던 큰 아들이 나중에 마음을 바꾸고 포도밭에 가서 일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똑같은 부탁을 했는데, 그는 처음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첫째 아들이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의 윤리적 삶이 사회지도자들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믿음이 총족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의란 윤리와 도덕 그리고 사회 정의에 기반을 두지 않습니다. 의로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자 되심을 믿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의로운 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희망을 갖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다윗은 의인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의로운 자들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어려울 때에 여호와는 그들이 피할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우시며 구원해 주십니다. 악한 자들로부터 구원해 내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요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께 피하기 때문입니다.” 

이남규 목사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