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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은혜(4) 보호 아래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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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4) 보호 아래의 생활

“보호 아래”를 의미하는 영어 “언더커버 undercover”는 다양한 상황을 묘사합니다. 매우 단순하게는  누워 자는 아이가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있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부모 뒤로 몸을 숨긴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덤불이나 돌 밑에 숨은 동물을 묘사할 때도 이 낱말이 사용됩니다. 밖에는 폭풍이 몰아치지만 집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가족을 가리킬 때도 이 말이 사용됩니다. 더 폭을 넓혀서, 한 마을을 군대나 경찰이 둘러 싸서 보호하는 상황도 언더커버라고 합니다. 시간이 경과되면서 이 단어는 사회에 적합하게 발전되어 사용됩니다. 안전을 위해 자신들의 정체를 가린 사람을 언더커버, 즉 “비밀 첩보원”이라 부릅니다. 첩보원은 적에게 발각되지 않고서 자유로이 활약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국 정부의 세밀한 보호를 받으면서 적진에서 제약없이 활동합니다. 이처럼 언더커버의 용례가 다양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보호와 자유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존 비비어는 이 단어의 기독교 신앙을 위한 사용 예로 다윗의 시를 소개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다윗은 이곳에서 변함 없이 하나님의 지속적인 도우심과 보호를 받는  사람이 누군지를 언급합니다.  그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라고 제한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허물 없는 사귐을 갖는 자가 그분의  특별한 은혜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를 영원히 보호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재앙도 침범할 수 없는 주님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삶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의 사상을 은혜 아래 사는 자로 설명합니다.  은혜 아래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어 죄용서 받고 중생하여, 한 평생 그분의 보호와 사랑을 받는 삶입니다.  한 개인에게 이 삶보다 더 최상의 특권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 삶은 하나님과 친밀하고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경험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우리가 소유한 더 없는 특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를 속박하는 모든 것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은혜 아래 삶은 세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은혜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율법을 완벽하게 준수하려는 절망적인 고충에서 해방됩니다. 자신의 의로 율법의 정상에 이르려 했던 바울은 중생 후에 깨달은 도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 시켜서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율법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죄악된 욕망이나 구원할 능력이 없는 율법 (의도는 훌륭하지만)의 노예 상태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자유는 큰 대가를 치르고 얻게 된 것입니다. 태생이 죄인인 우리가 근본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누군가가 우리를 해방시켜야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인간이 만든 모든 법과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율법의 속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이 자유는 인간이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방종이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목적을 이룹니다. 성경은 이 진리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설명합니다.

   둘째,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죄의 지배에서 자유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고 설명합니다.  은혜는 능력이 있는 선물입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이며,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삶의 모든 영역에 드러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본성이 바뀌었고,  이제 그의 삶에는 신성한 생명과 영적 활력과 에너지와 능력의 공급자이신 성령이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능력으로 통치하는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율법의 모든 측면과 전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것은 속사람의 부패된 욕망을 미워하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뜻에 마음을 맞추는 문제이며, 육체의 힘을 신뢰하는 태도를 내려 놓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자연인으로사는 불가능한 삶의 새로운 법칙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책임은 이전처럼 본능적으로 육체를 의지하던 태도에서 은혜를 현실로 나타나에 하는 성령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태도 변화를 요구합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셋째,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직면한 현실과 나타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전체를 할애하여 이 진리를 설명합니다. 먼저 그는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노예로 만드는 영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는 영이십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되어질 일들,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직면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적대 세력이나, 그리고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 이런저런 종류의 끔찍한 사건들에서 경험하게될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입양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분의 보호 아래 삶이 안전하며,  또한 하나님의 상속 재산이 보장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을 은혜 아래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절대 보장의 내용으로 끝맺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전능자의 보호와 도움을 얻는 인생 길은 율법 아래가 아닌 은혜 아래의 삶입니다. 은혜 아래 생활로 인한 하나님의 선물은 모든 종류의 권위로부터 자연적으로 해방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하는 새로운 충성과 새로운 책임과 그리고 새로운 인격의 확립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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