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1), “넓고 안전한 곳으로의 이동”
형 에서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사백 명의 남자들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두려운 가운데 도움을 청합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사용한 “건져내소서”는 히브리어 “나살”입니다. 이 단어는 “구원하다”는 희랍어 “소조”의 뿌리 중의 하나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구원하소서”의 히브리어 “이시아”도 희랍어 “소조”의 어근 중의 하나입니다. 예레미아는 유다 백성들 가운데 이집트로 간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고, 도망간 몇 사람만 고국에 돌아 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가 사용한 “피하다”와 “도망가다”는 동일어 “파리트”인데 역시 “구원하다”는 희랍어 소조의 뿌리입니다.
신약 성경에 “구원하다”로 번역된 희랍어 동사는 “소조”이고, 명사형 “구원”은 “소테리아”입니다.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소조의 어근들의 원래 뜻은 “넓게 되다” 혹은 “확장되다”입니다. 빙둘러 가두거나 쪼그라들도록 짖누르는 압박으로부터 넓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희랍어 사전은 구원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억압이 일종의 공간적 감금이나 투옥으로 간주된다면, 구원은 그것으로터 열린 공간으로 나가는 것이다. 소조는 제한된 장소나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을 위해 ‘공간을 넓게 만든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 사람이 그 넓혀진 공간과 세계로 이동한다는 의미도 있다. 구원은 억압받는 자를 지지하고 억압자에 반대하는 제3자의 개입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에, 소조는 ‘구원하러 오다’와 ‘구원을 경험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구원은 자신을 고난에서 구해 주는 더 강하거나 힘이 센 누군가의 보호와 의존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그것은 일방적으로 약하거나 억압받는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특징이 있다.”
구원에 관한 기독교의 구체적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 (LXX)에서 이 낱말의 사용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LXX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칠십인 역본에서 소테리아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첫째, 소테리아는 가장 단순한 의미로 일반적인 “안전”과 “보안”을 뜻합니다. 솔로몬은 “조언이 없으면 백성이 넘어져도 조언자가 많으면 안전이 (소테이라)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벧엘 들판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 이렇게 맹세합니다. “내가 평안히 (소테리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총리가 된 요셉은 자기 앞에 무릎꿇은 형제들을 향하여 “자루에 잔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안전하게 (소테리아)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약속합니다.
둘째, 소테리아는 사람이 직면한 “위험으로부터의 구원”을 뜻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적들이 자신을 향하여 “하나님 안에는 나를 위한 소테리아가 없다”고 조롱한다고 말합니다.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만이 자신의 소테리아인 사실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아, 어째서 네가 낙심하며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네 희망을 하나님께 두어라. 나는 내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 자신에게 소테리아를 해달라고 외칩니다. 이사야는 환난 가운데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소테리아를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소테리아는 공격하는 “적으로부터의 구원”을 뜻합니다. 삼손은 여호와께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사울은 암몬 사람 나하스와 그의 군대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해 주신 소테리아는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아람 왕의 공격을 눈 앞에 둔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가 간절히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할 소테리아를 보내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예전처럼 자기 집에 돌아와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주시고, 또 모압의 군대에서 구원해 주신 소테리아는 여호와였습니다. 소테리아는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를 통해 그들을 적들로부터 벗어나게 하신 신성한 구원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넷째, 소테리아는 때때로 “종말론적 구원”을 뜻합니다. 구원은 이 세상의 끝과 함께 저절로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으로 다가 올 새로운 세상에서 완성되는 구원입니다. 이사야는 이 진리를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소테리아를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고 기록합니다. 계시록은 심판을 벗어나 영원한 구원에 이른 사람들이 벅찬 기쁨으로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고 찬양할 것을 예고합니다.
다섯째, 소테리아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며 또한 하나님에게 귀속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람의 도움 (소테리아)은 헛된 것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그 특징은 소테리아의 하나님은 곧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이 원리를 다윗은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힘이 무력할 때, 하나님의 소테리아가 개입합니다. 인간의 극한 상황은 언제나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기적을 통해 홍해를 건넌 후에 “여호와께서는 나의 힘,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라”고 노래를 시작한 모세는 “주님께서는 사랑의 약속으로 주님께서 구원하신 백성을 이끄셨습니다.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거룩한 땅으로 이동시켰습니다”라고 찬양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모든 원수들에서 구원된 후에 “내가 이길 수 없는 강한 원수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발을 사슴의 발처럼 만드셔서 나를 높은 곳에 든든하게 세워주셨다”고 노래합니다.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낳았을 때 즐거이 노래합니다.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우리를 넓고 높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시는 우리의 소테리아입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