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4), “토털 total혜택”
구원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소조” (동사형)와 소테리아 (명사)의 본래 의미는 심각한 위험에 있는 사람을 신이나 사람이 재빠르게 구원하는 매우 역동적인 행위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낱말들의 사용은 사법적 비난으로부터 구원 (하다), 전투와 항해에서 구원 (하다), 또는 질병으로부터 구원 혹은 치료 (하다), 그리고 위험한 여행에서 안전한 귀환 등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또 다른 동사형인 “소조마이”는 “치료되다” 혹은 “건강해지거나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한다”를 의미합니다.
네로 황제 시대에 철학으로 명성을 얻었던 루프스는 “완벽한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은 매우 부지런하고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소조마이를 “치료하다”로 사용합니다. 고대 그리스 비문에는 소테리아를 다음과 같이 “혜택”으로 사용합니다. “내가 맹세를 지키면 많은 축복을 받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내가 맹세를 어기면 모든 신들이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해 농작물, 과일, 그리고 재산의 어떤 혜택도 허락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비문에는 제우스 신에게 국가, 도시, 시민, 아내들, 자녀 및 거주자들의 소테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글이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그들의 평화와 부와 곡물과 과일의 성장입니다. 그리스 사회에서 이 단어들은 한 개인을 둘러 싼 국가와 사회와 개인 삶에 대한 웰빙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소조나 소테리아의 사용 배경은 전체적 매우 긍정적이며 어떤 경우는 문제를 완전히 없이 하는 구원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는 여전히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구조되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에 반해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들은 완전한 구원으로 사람의 몸과 영혼의 구원을 포함합니다. 신약에 사용되는 구원의 영역을 더 세분히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소테리아는 신체적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분석해 보면 그분의 관심은 인간 존재를 형성하는 영혼 뿐만 아니라 육체였슴이 발견됩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인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며 만집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보시며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자, 그는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 벌거벗은 상태로 무덤 사이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지르자, 예수님은 “귀신아 그 사람 속에서 나오라고” 명령합니다. 누가복음은 그 때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육체적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건강한 신체로 회복시키십니다.
둘째, 소테리아는 직면한 위험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탔던 배가 큰 광풍에 부딪쳐 위험하게 되자 그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구원하옵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니 아주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지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소리지릅니다.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구원해 주십니다. 이 구원은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한정된 것이며, 모든 안전이 상실되었을 때에도 안전하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언급했듯이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끓을 수 없다”는 확신입니다.
셋째, 소테리아는 정신적 타락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인간에 관해 성경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람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거짓말, 방탕, 질투, 비방, 교만, 어리석음이다.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오고 사람을 더럽게 한다.” 베드로는 이와같은 내면의 부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의 소테리아를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예방적 자격, 즉 세속적 질서를 이길 수 있는 신성한 방부제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의 정신은 세상에 있으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거룩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넷째, 소테리아는 생명의 상실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이땅에 존재 이유를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사명은 영혼과 생명을 잃은 처지에 있는 한 개인을 구출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구원은 한 개인이 죽음으로 이끌리는 가장 치명적인 길에서 최고의 활력 있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다섯째, 소테리아는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의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희랍어 형태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전합니다. 근본이 타락된 존재인 인간은 죄의 종입니다. 이 현실에서 인간은 스스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이 비참한 상태에서 인간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상태를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설명합니다.
여섯째, 소테리아는 진노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죄인과 관련하여 빠질 수 없는 것은 재판입니다. 인간의 신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정의를 시행하시는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노로부터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귀결된다고 선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무엇인지를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테리아의 완전한 영향과 전체적 경이로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왕으로 즉위하시는 날에 경험됩니다. 하나님의 소테리아는 금생과 내생에서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사망케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사람을 구하십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