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전권대사”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지방을 순회하는 관원이었습니다. 그는 평민으로 변장하여 비밀리에 지방에 보내져 탐관오리를 척결하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임금의 대리인으로, 임금이 친히 임명하고 파견하여 특수한 직임을 시행하기 때문에 암행어사를 특명사신이라 불렀습니다. 암행어사는 임금이 위임한 내용 안에서 권한을 이행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도 암행어사와 비슷한 임무를 맡은 관원들이 있었습니다. “샬리아흐”입니다. 왕에게 선택받은 이 사람들은 왕의 위임을 받고 왕이 지시하는 곳으로 보내집니다. 왕의 권한을 위임 받은 샬리아흐는 보내진 곳에서 왕의 대리자로 업무를 봅니다. 그 사회에서는 “보냄받은 사람은 보낸 사람 그 자신과 같다” 혹은 “위임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그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은 보낸 자의 것이다”는 속담이 회자되었습니다. 보냄 받은 샬리아흐의 지위와 권한은 그를 보낸 왕와 동등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기 위해 종들을 그녀가 살고 있는 갈멜로 보냅니다. 그곳에 이른 종들은 그녀에게 “다윗이 당신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우리를 당신께 보내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비가일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면서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나는 내 주의 종들의 발까지도 기꺼이 씻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다윗에게 하듯 종들을 섬겼습니다.
샬리아흐는 특별한 임무를 위임받고 보내지는 전령자를 지칭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령자의 이름이나 신상은 밝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사람을 보낼 때는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혹은 “종을 보내어”라고 표현됩니다. 샬리아흐에게 중요한 것은 보내는 사람과 그 사람의 목적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파견된 사람은 자신이 위임 받은 목적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전제였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보냄받은 자의 의지는 보낸 자의 의지에 긴밀하게 종속시켜야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샤리아흐”를 “아포스톨로스”라 불렀습니다. “사도”로 번역되는 희랍어 아포스톨로스는 보낸 자의 완전한 권한을 갖고 보내진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총독을 보내서 속주를 통치했습니다. 총독들은 황제의 권위를 대표했습니다. 그는 황제의 대리자로 자신의 위임 권한을 수행했습니다. 총독은 제국을 위해 황제를 대신하여 보냄받은 자로 위임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자기 개인의 안녕보다 더 중요시 했습니 다. 비록 보냄 받은 자의 권위는 보낸 자의 것과 동등하지만, 이 둘은 종과 주인과의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은 주인보다 크지 않고 사도도 보낸 사람보다 크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아포스톨로스, 즉 사도는 회중의 위임된 대표자를 의미했습니다.사도 바울은 디도를 소개하면서 “나의 동료로서 여러분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협조자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가는 다른 형제들은 여러 교회가 뽑아서 보내는 대표들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대표였던 에바브로디도를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 (아포스톨로스)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포괄적으로는 사명을 인식하고 교회를 세우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를 추종하는 수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자 사회 지배층이었던 제사장들이 요한에게 묻습니다. “네가 누군데 백성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세례를 베푸느냐?” 세례 요한은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라고 답합니다. 얼마 뒤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는 그것을 직접 들은 증인이다”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힙니다.
신약성경에서 “보내심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 관계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보내시는 분이시고, 사람은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 계획과 목적을 세상에 드러내시기 위해서 사람을 지명하셔서 보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란 하나님의 위임을 받고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는 자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그분의 권위와 능력과 메시지를 받은 자입니다. 그는 한계가 없는 능력과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권위를 위임 받은 전권대사 (plenipotentiary)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하나님이다” 혹은 “나는 왕의 아들이다”라고 소개하지 않고 이렇게 합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도 보내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보내신 이의 뜻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유언을 남기셨습니다.첫번째는 십자가의 죽음 직전이었고, 두 번째는 승천하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그 유언들은 동일한 내용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곳에서 “너희”는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보내심을 받은 자를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대사입니다 We are therefore Christ’s ambassadors.” 대사란 자신의 국가와 백성을 대표해서 외국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대사란 대통령과 동일한 권한을 위임받고 외국에 보냄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고 이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입니다. 하나님의 전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위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명의 구체성과 성취의 절대성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