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8), “교회의 정체성과 소명 선포”
교회는 모든 시대에 정체성 문제로 혼란을 겪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면서 교회가 부흥기를 맞이하지만, 한면으로는 어려운 난관에 부딪힙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했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선포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형제들이여, 예수는 우리와 같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설교하는 자들도 등장합니다. 소위 거짓된 가르침이 교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 엄히 경고합니다. 베드로도 거짓된 자들의 가르침을 단호하게 경계합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사도 요한은 그들은 교회의 근본 질서를 흔드는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맞서 싸울 것을 권합니다.
설교는 교회를 공격하고 도전해 오는 세력에 맞서 그 정체성을 수호하고 교회의 소명을 명확히 해 왔습니다. 2세기 초에 쓰인 열두 사도를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디다케』에는 참 사도와 거짓 사도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만약 설교자가 사도적 신앙에 어긋나거나, 돈을 요구하거나, 또는 자신이 설교한 것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거짓선지자라고 규정합니다. 2세기 중반에 집필된 순교자 저스틴의 『첫번째 변증서』에는 그리스도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기에 인류의 구세주시며 기독교는 참종교인 것을 강조합니다. 2 세기 말, 터틀리안은 교회가 당하는 거짓 비난을 벗기고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박해의 부당함을 증명하기 위해 『변증론』을 썼습니다.
인본주의 사상이 교회를 위협하던 르네상스 시대에도 설교는 교회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유일한 활동 수단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였던 존 위클리프는 성경만이 기독교 신앙과 삶의 최고 권위를 갖는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 교황의 권세, 면죄부, 화체설, 그리고 교회의 부를 공격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 전파를 통해 존경을 받으며, 설교는 사제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봉사다고 외쳤습니다. 루터는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인생에서 큰 위기를 겪을 때, “설령 내가 이것 때문에 내 육신과 생명을 잃는다 해도, 나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은 항상 교회를 자기에게 동화시켜 삼키려하고, 이에 맞서 대항하는 교회의 태도는 극도로 약했습니다. 그 결과는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지닌 극도로 약한 정체성 감각에서 드러납니다. 이 문제는 만성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의 정체성과 소명이 희미해지는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신앙의 근본을 선포해야할 필요가 항상 있습니다. 설교는 이 사명을 이어왔습니다. 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중심적인 삶, 즉 말씀과 예배와 증거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떠올리게 함으로써 이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말씀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달게 받아 순종하면 복이 되지만,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화가 임하게 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그러나 네가 만일 네 하나님 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성경은 일관성 있게 말씀에 반응하는 결과에 따라 은총을 얻고 화를 당하는 원리를 강조합니다. 설교는 본문이 말하게 하는 활동으로서,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서 성경의 권위를 강화해야합니다. 설교 없이는 이러한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둘째, 교회는 예배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제 1 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입니다. 성경에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우상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언급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고 섬기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월리스 (D. F. Wallace)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예배합니다. 사실상 무신론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은 무엇을 예배할지에 대한 것 뿐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에 하나님 보다 더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로맨틱한 사랑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건강이든 매력적인 외모든 이모든 것들이 우상입니다. 우상은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이끌기 때문에 일종의 예배입니다. 만약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인간의 허탈감은 더 깊어집니다. 설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와 구원의 길 (구속, 거듭남, 용서, 수용, 입양, 보호, 인도, 보존, 양육)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이를 통해 순종과 경배의 응답으로 인도해야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행하신 일들, 그리고 앞으로 이루실 약속된 일들을 정기적으로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려야합니다.
셋째, 교회는 증거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제자들에게 이렇게 밝힙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교회는 생리적으로 증거 지향적인 존재임을 예수님은 삶으로 보이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셨던 마지막 말씀도 증거를 위한 보냄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 교회에 성령이 임하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원시 교회 성도들 신앙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를 통해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라고 교회의 증거 지향적 원칙을 일깨워 줍니다. 전도 활동의 중심에는 언제나 설교가 있었습니다.
모든 시대에 설교는 교회의 올바른 사명감을 불러 일으키고, 활력을 불어 넣고, 때때로 방향을 바로 잡아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지속해 왔습니다. 말씀과 예배와 증거 중심의 교회 정체성은 오직 설교의 활동을 통해서 보존되며 전수되어집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