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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성전(4), 열등한 건물과 우월한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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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4), 열등한 건물과 우월한 그리스도

예루살렘 성전의 외부와 내부에 관하여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자신의 글에 매우 소상히 묘사합니다. 성전은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높은 언덕의 넓은 평지에 세워졌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모든 보물들과 이웃 나라에서 보내온 공물들을 다 바쳐 오랜 세월 동안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성전 전체의 면적은 약 14만 평방미터(축구장 20개를 합친 크기)로, 사방은 거대한 담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성전 건물의 높이는 45미터, 너비는 27미터, 전체 길이는 45미터였으며 성전 문은 22미터였습니다. 문들은 사방이 금과 은으로 덮였고, 문설주와 상인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전 안쪽의 지성소 정면 벽은 온통 금으로 덮여 있어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빛처럼 보였습니다. 성전 안에는 온 인류에게 가장 경이롭고 유명한 세 가지 물건, 즉 촛대와 진설병을 차리는 상과 향단이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상의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나 살 수 없는 곳을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분께 바쳐야 함을 상징했습니다.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집이자 예배하는 집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역사학자 프로코피우스는 과장이라 비판받을 만큼 성전의 장엄함을 묘사합니다. “성전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구별되며, 그 규모와 치수의 조화가 뛰어나 과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없다. 일반 건물에 비해 훨씬 웅장하고 비교할 수 없이 우아하다. 성전은 유난히 빛과 햇살로 가득하다. 왜냐하면 그곳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태양빛이 아니라, 그 빛줄기가 성전 내부에서 생성되어 성전 안에 가득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태양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기술하든 나는 인간의 부족함과 연약한 언어로 이 건물을 묘사할 수 없다. 건물 위에 우뚝 솟은 아치형 돔은 건물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그것은 마치 전설 속 황금 사슬로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아래 공간을 덮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성전 안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기뻐하며,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기쁨을 자랑한다.” 프로코피우스는 성전을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신성한 건축물로, 빛이 스스로 발현되는 근원지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권위를 동시에 드러내는 우주적 공간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와 인간과의 동행을 뜻하는 성전의 근본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성전 건물에 집착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스데반은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는다”라고 외칩니다.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다”라는 가르침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사상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기록하며 그리스도가 성전임을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숭배 사상의 뿌리를 가진 초기 교회 성도들은 여전히 성전과 맺은 관계를 끊지 못했습니다. 위압감을 주는 성전의 장엄한 자태, 정교한 제사 제도, 성전 예식을 집례하는 제사장의 근엄한 모습, 유년 시절부터 친숙한 분위기와 같은 유대교의 정서는 그들의 신앙 성장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요소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버리고 옛 유대교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교의 성전 제의를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증함으로써 그들을 배교의 위험에서 지켰습니다. 바울은 열등하고 불완전하며 무능한 유대교 성전 제의를 그리스도의 다양한 우월성과 비교했습니다.

   첫째는 더 좋은 성전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유대교 성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성전의 모형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것의 요점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대제사장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지극히 거룩한 곳인 성소에서 섬기고 계십니다. 그곳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장막이요, 참 성막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성소는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의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더 크고 완전한 성막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것도 아니며, 이 세상에 속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상의 참 성전에 비해, 인간이 만든 지상의 성전은 불완전하여 참된 성전이 아닙니다.

   둘째는 더 좋은 제사장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하는 천상 성소의 그림자입니다. “그분(예수님)은 인간의 법과 규칙에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의 능력으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실 때 하나님께서 맹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너는 영원한 제사장이다’라고 약속하셨으니, 그 마음을 결코 바꾸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죽으면 제사장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에 제사장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기 때문에 제사장의 일을 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다른 제사장들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매일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려 단 한 번에 그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맡으신 제사장의 직분은 다른 제사장들의 일보다 훨씬 더 큽니다.” 죽을 운명과 반복적 희생 제사가 필연인 옛 성전의 제사장들은, 단번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친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 비해 열등합니다.

   셋째는 더 좋은 제사입니다.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지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자신의 피가 아닌 동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오셔서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제도를 세우시려고 첫 번째 제사 제도를 폐지하신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매일 제단 앞에 서서 맡은 일을 행합니다. 그러나 그 제사들은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위해 단 한 번의 제사를 드리시고, 단 한 번의 제사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무능한 동물의 피 제사에 비해,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애 주는 예수님의 피 제사는 우월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때문에 삶의 한복판에서 자유롭고 담대하게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께서 열어 주신 새로운 길로 들어갑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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