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식, “사랑의 축제”
“황제 각하, 저는 모든 의심이 들 때 각하께 의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각하 외에 제 불확실성을 더 잘 인도하고 제 무지를 더 잘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기독교인 재판에 참석해 본 적이 없기에 그들을 심문하거나 처벌할 방법과 한계를 모릅니다. 그들은 특정한 날 해가 뜨기 전에 모여서 마치 신에게 하듯이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어떤 악행, 사기, 절도, 간음을 하지 않고 말도 위조하지 않겠다고 서로 맹세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헤어졌다가 다시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이 그들의 관습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의식적으로 형제를 살해하고, 그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랑의 잔치”를 합니다). 이들에게서는 타락하고 지나친 미신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수를 고려할 때, 이 문제는 각하께 의뢰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모든 계층과 연령, 그리고 남녀 모두가 기소에 연루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 전염성 있는 미신은 도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마을과 농촌 지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따라서 저는 이 재판을 연기하고 즉시 각하께 상담을 구합니다.” 이 편지는 사무관 플니우스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께 보고한 내용입니다.
로마 당국은 기독교인들이 하는 성찬예식을 식인종처럼 인육을 먹는 사람들로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불법 집단으로 규정하고 핍박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 마시는 것을 엿들었던 로마인들이 인육을 먹고 피를 마신다고 당국에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핍박이 거세지고 심지어는 죽음을 당하기도 했지만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성찬예식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찬식을 소중히 지켰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 거짓 가르침이 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초기 교회는 사도신경을 만듭니다. 삼위일체를 포함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사도신경에는 성찬식을 의미하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를 명시합니다.
“성찬 Holy Communion”의 동의어인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주의 만찬 The Lord’s Supper,” 그리고 “성체 Eucharist”는 “친교,” “참여,” “나눔”과 같은 뜻입니다. 성찬 예식은 예수님께서 시작하셨고 그 뒤를 이어 열두 사도들이 시행해 왔지만, 그 선구적 예들은 이스라엘의 가정생활, 부족생활, 그리고 종교 생활, 특히 유월절과 같은 절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찬은 정기적으로 매우 자주 행하는 성도 간에 친교 행위가 있었습니다. 성찬식은 초대 교회부터 교회의 소중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면서 성찬 예식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유월절 어린양과 동일시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 날때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뿌려 죽음에서 구원받았던 날인 유월절 (Passover)을 기념했습니다. 인간을 속박에서 구원하는 행위를 상징하는 옛 유월절의 의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성찬은 유월절을 대체했으며 기독교의 영구적인 예식이 되었습니다. 성찬의 근본적이고 진성한 의미는 한 개인이 예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분과 맺는 친밀한 교제입니다. 성찬식은 축제적인 친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의 교회적인 의미를 상세히 소개합니다. 첫째로 성찬 예식은 성도들 간의 하나를 이루는 친교의 축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성찬은 성도 상호 간에 긴밀한 교제 와 일치와 화해와 평화의 표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간의 교제의 합당성을 자주 권고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 그리스도와 교제를 맺은 성도들은 성찬식을 통해 성도 서로간의 교제하며 하나를 이룹니다.
두번째로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자의 내면의 정결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엄숙한 성찬 예식은 진지하게 거행해야 하며 영적인 준비와 더불어 행해야 합니다. 물론 성찬에 참여할 절대적“합당”한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은 이 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식의 본질은 자기 성찰을 요구합니다.
세번째로 성찬 예식에 참여자는 전도의 사명이 있슴을 알립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 구절의 뜻을 더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여러분이 엄숙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이 빵을 먹을 때마다, 그리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은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죽음을 재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교회의 영원한 기초로서 주님이 오실 때가지 시행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성찬 공동체의 일원은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전해야 합니다. 성찬은 교회의 지속적인 선교의 토대입니다. 교회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찬 예식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떡을 먹는 축제인 사실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아멘!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