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가치 없는 자를 향한 사랑”
아론의 장남인 나답과 차남인 아비후가 제사에 허용되지 않은 불로 향을 피우다가 하나님께서 내리신 불에 타 죽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제사장의 역할과 그 직임의 중대성을 다시 천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제사장이 속죄소 앞에 나오기 위해 준비할 사항들과 그 안에서 행해야 하는 의식 (ceremonies)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말씀합니다. 우선 복장에 관해 말씀합니다. 그는 몸 전체를 물로 씻은 후에 화려한 의복 대신 장식이 전혀 없는 모시로 짠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 옷은 거룩하신 분의 면전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순결을 상징하는 지극히 하얀 옷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사 의식을 위해 수송아지와 숫염소와 숫양을 제물로 준비했습니다. 적합한 복장과 합당한 제물을 준비한 후에 제사장은 죄를 고백하는 제사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임재하신 속죄소를 향해 제물이 흘린 피를 흩뿌림으로 백성의 죄를 속죄했습니다. 이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소외시킨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고 교제와 평화를 회복시켰습니다.
희생 제사에 관련된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속죄’의 어원은 “덮다” 또는 “닦아내다”는 히브리어 “카파르”입니다. 이 낱말 속에는 제사장, 백성, 희생 제물, 피, 그리고 죄 용서를 위한 매년 드리는 제사 의식과 같은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헬라 문화에서 생활하던 유대인들은 속죄를 “화해시키다” 또는 “정화시키다”는 뜻을 가진 “힐라스코마이”나 “카탈리조”를 사용하여 표현했습니다. 이 단어들은 개인이 자신의 죄에 대한 값을 치르고 속죄가 실현되는 행위를 지칭합니다. 제사장은 의식을 진행하고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속죄의 길을 여시는 제사의 효과를 묘사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속죄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포함한 그분의 사역 전반을 묘사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속죄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의 참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성취됩니다. 이 속죄의 질서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은 신약 성경과 초기 교회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에 속죄는 기독교 신앙 전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 율법의 의미, 죄의 특성, 악한 권세의 힘, 구원의 질서, 그리고 세상의 종말론적 구원에 관한 모든 가르침은 속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구약 성경의 속죄와 그 의식과 다릅니다. 특히 효능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날카롭게 대조됩니다. 첫째, 예수님의 속죄는 단회적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속죄는 매년 속죄 의식 때에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제물의 피로 식을 거행했지만,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닌 참된 성소, 곧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한 번만 들어가셔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더 이상 시간과 장소와 상황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이르는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그분과 화해시켜 화평을 이루게 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속죄의 주권은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죄에 대한 속죄는 하나님에게서 그 근원을 찾았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죄를 알지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속죄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도권은 그분의 근본 성품인 사랑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설명합니다. 속죄는 죄 많고 소외된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열망에서 그 궁극적인 목적을 발견합니다. 영원한 사랑으로 인간을 이끄시는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러 그들이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심으로써 그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속죄의 근원은 가치 없는 사람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속죄의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분이 아닌 것임을 말씀합니다. 대신, 사랑은 하나님 존재의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사람들 스스로에게서는 사랑을 불러일으킬 만한 어떤 가치나 대가를 발견할 수 없지만, 사랑이 존재의 근본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으로 대우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신 이유를 모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그 종 되었던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너희를 속량하셨다.” 자기 백성을 향한 이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아무 가치 없는 자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묘사합니다.
넷째, 예수님의 속죄의 기초는 공의입니다. 누군가를 대속한다는 것은 값을 치르고 그의 해방을 사서 구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항이며,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그것에 진노로 반응하십니다. 죄는 참으로 끔찍한 책임을 초래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눈이 정결하시어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몸과 영혼을 다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서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나타나느니라”고, 심판 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랑에 이끌리셨지만, 하나님의 공의에 적합한 방식으로 구원하셔야 했습니다. 속죄의 필요성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흘리심으로 우리 형벌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룹니다. 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신을 세상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외인으로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지만,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이남규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