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과 때, “신비로운 선물”
윌리엄 밀러 (William Miller)는 1843년 3월 21일부터 1844년 3월 21일 사이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동시에 세상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예언에 동요된 수많은 지식인들과 목회자들이 밀러의 예수재림 운동에 참가합니다. 1년이 지났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밀러는 다음과 같이 변명했습니다. “제가 날짜를 잘못 계산한 실수와 저의 실망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가까이 왔습니다. 집 문앞에 와 계십니다.” 실망한 추종자들에게 밀러는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님은 분명 돌아 오신다며, 다시 희망의 날을 알립니다. 재림을 기대하는 수 많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교회를 떠나 밀러 집단에 속했습니다. 재산을 팔고, 가게 운영을 중단하고, 직장을 그만 두고, 그리고 가축과 농작을 버리고 그 집단에 들어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날이 되었지만, 역시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론들은 이 날을 “대 실망의 날”라며 밀러를 조롱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떠났지만, 그는 남은 자들과 함께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를 창립합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언급했듯이 성경에 언급된 예수님 재림의 때와 시간에 관한 단어들의 의미에 관한 오해로 이단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때”를 표현할 때 일반적으로 세 단어를 썼습니다. 첫번째는 “크로노스”입니다. 이 낱말은 일반 시간을 표현할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만남의 시간, 오랜 시간, 짧았던 순간, 지나가는 시간, 등과 같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때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에 언급된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 자식이 어려서 그가 가정교사들 밑에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있는 동안, 에베소 성도들이 바울에게 “더 오래 머물러 있어달라고” 청했던 기간 등, 이 낱말은 신앙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지 않는 시간을 나타냅니다.
두번째는 “카이로스”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장 적합한 때, 결정적이거나 중대한 시점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씨를 뿌려 수고 하여 결실하는 때, 약속했던 시간이 왔을 때와 마칠 때, 최선을 다한 사람이 상을 받는 때, 기도가 응답 받을 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설계 하셨던 일들이 성취되는 때를 표현하는 단어가 카이로스입니다. 이 단어의 특징은 운명적이고 결정적인 시점을 나타내며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지상에서의 삶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때 아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제자들은 아무 때나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가 차야 그곳에 갈 수 있었습니다.
카이로스는 인간 의지가 개입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고정된 시간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채우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는 시간입니다. 이 원리는 사도 바울의 글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제 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사도들의 선포를 통하여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영생의 하나님의 때에 그분께서 이루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계획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 (그리스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꼭 적절한 때에 그 증거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시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인간 마음의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신자들이 행복을 누리는 때도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이뤄집니다.
세번째는 “호라”입니다. “올바른, 고정된, 적합한 때”로, 사건이 발생되는 정해진 때나 작업을 착수 하기에 최적의 시간입니다. 카이로스와 비슷한 호라는 행동하는 “그 때” 이후의 영향까지를 의미합니다. 임신한 여인에게 “그녀의 시간”은 출산의 순간이며, 이때 그녀의 모성이 실현됩니다. 보리나 밀의 수확의 때는 추수 꾼들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서 곳간에 저장하는 시기입니다. 저녁 때는 무리들이 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때가 저물어 가매” 들판에 있는 무리들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제자들의 제안에,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시간에 대한 말씀도 이와 유사점이 있습니다. 호라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무언가를 하시기 위해 계획하신 때, 특별히 예수님께서 지금 행동해야 하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개념을 “그의 때가 왔다” 혹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실 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졌음을 아셨다는 사실은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의 헌금함 앞에서 가르치실 때도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표현함으로, 예수님의 때는 고정되어 있슴을 알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의 요구를 충족시키셨습니다. 호라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예수님의 대적들이 행동하는 시간을 부정적으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도 호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때에 관한 플랜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그 날과 그 때는 영적 존재인 천사들도 그리고 아버지와 가까이 있는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는 것이 거듭 강조됩니다. 이 날은 도둑이 어두운 밤에 오는 것처럼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임합니다. 재림의 때와 날을 결정하는 데에 인간은 끼어 들 수 없고 침범할 수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월 (카이로스)를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일상의 평범한 크로노스가 카이로스의 손길을 받을 때 우리는 비범해질 수 있습니다. 그 카이로스가 이뤄지는 때는 하나님 영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호라가 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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