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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완전 변화된 사람들,” 부활 (3)

“완전 변화된 사람들,” 부활 (3)

문자적으로 “다시 일어나다” 혹은 “부활하다”는 고대 히랍어는 “아나스타시스”입니다. 이 단어의 기초적인 뜻은 “사람이 위로 올라 가도록 돌 같은 것을 놓다,” 또는 “죽음에서 일어나다”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머의 글에는 “잠자는 사람을 깨워서 일으키다” 혹은 “누워 있는 사람을 일어나도록 원인을 제공하다”로 사용됩니다. 이후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는 숨이 멎은 환자를 인공호흡 같은 수단으로 소생시킨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돌이든, 깨워주는 사람이든, 인공호흡이든, 부활을 위해서는 원인 제공 수단이 필수조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C. S.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 첫번째 사실은 자기 눈으로 부활을 봤다고 말한 사람들이다. 기독교의 초기에 ‘사도’란 부활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자를 의미했다.” 부활의 증인 세 사람을 소개합니다.  

   첫번째, 야고보입니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는 나사렛 동네 주민 요셉의 아들이며 예수님의 형제였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과 어울리며 성장했습니다. 어른이 된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할 때 이웃들은 “그는 목수가 아니냐?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고, 야고보, 요세, 유다, 그리고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며, 예수님을 거절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신이 나갔다”며 미친 사람 취급했을 때, 야고보도 그들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요한은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야고보는 예수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요셉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초기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재판을 기록합니다. “그 (재판관)는 이름이 야고보, 즉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와 다른 사람들 [또는 그의 동료들]을 공회 앞으로 불러왔다. 그는 이 사람들이 법을 어긴 자들이라고 비난을 했고, 그들을 돌로 쳐 사형당하도록 넘겨줬다.” 교회의 핵심 지도자로 변했던 야고보는 결국 AD 62년에 순교합니다. 바클레이 교수는 강퍅했던 야고보가 변화된 원인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그것을 설명할 길은 하나뿐이다. 죽음에서 일어나신 예수께서 살아 있는 모습으로 야고보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야고보가 홀로 있을 때 그 앞에 출현합니다. 이 만남은 마치 다마스커스 도로에서 주님을 만나 역방향으로 인생이 전개된 바울처럼, 야고보 삶에 대 전환을 일으켰습니다.

   두번째, 베드로입니다. 로마에 초대 교회 성도들의 피신처였던 땅속 거주지가 있습니다. 이곳을 “카타콤”이라 부릅니다. 역사 유물들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분이 이곳을 방문하여 세월 속에 많이 바래진 벽화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 밑에는 빨간 색으로 헬라어와 라틴어로 “베드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초상화가 역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베드로의 얼굴입니다. 베드로의 흉상이 달걀 모양이 아니라 머리가 둥근 형으로 반쯤 대머리인 모습은 이 그 벽화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땅속 어둠 속에 들어간 초기 교회 성도들의 신앙 속에는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신앙의 뿌리인 베드로를 벽화로 새겼던 것입니다. 초기 베드로의 삶에는 신앙의 롤 모델이 될 만큼 훌륭한 믿음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위기 앞에 3년동안 따랐던 예수님을 가차없이 버리는 배신자였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허세를 부렸고,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늘 자신을 높이는 자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위협을 느낀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예수님을 버립니다. 복음이나 사명보다는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언제든 마음을 바꾸는 조석지변의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었던 동기도 역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완전 바꾼 주님과의 만남을 언급할 때,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기록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변화된 삶은 베드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이름이 바울로 바뀐 사울입니다. 바리새파 출신인 사울은 유대교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가르침과 전통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을 증오했습니다. 당시 막 시작되었던 기독교는 사울에게 반유대교 운동으로 여겨졌고, 그는 그 신생교를 박해하는 일에 온 힘을 쏟습니다. 최대 권력기관인 공회에 자격을 얻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감옥에 넣고 그들을 사형시키는 일에 동참합니다. 그는 기독교를 향한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그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박해했습니다. 오늘날 레바논의 다마스커스 지역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가던 도중에 살아나신 주님을 만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사울의 질문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부활의 주님께서 답하십니다. 주님과의 대면은 인간 눈에 보이는 것만 실존으로 믿었던 청년 사울의 영혼과 삶에 대 변혁을 일으킵니다. 기독교를 향한 완악한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어린 아이처럼 묻습니다. 교회의 극 적대자가 기독교의 최대 옹호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후에 복음 전파로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이처럼 180도 달라진 자신의 변화 원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을 찾아와 주셨고 이방에 복음을 전하도록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주후 64년 가을 어느 날 로마 법정에서 참수형을 당하기 전까지 바울은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해 삶을 헌신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힘과 권력에 처참하게 짓밟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자 제자들은 큰 충격과 함께 절망하며 낙심에 빠집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희망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저주받은 한 가냘픈 인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업까지 버리고 다시 뭉칩니다. 이제 복음 전파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 놓고 헌신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큰 유익을 가져오고 인류를 위한 선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대면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제자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생활 전반을 바꿔 놓았습니다. 변화된 삶은 살아 계신 주님과 함께 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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