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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 그런뜻이었구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신 하나님

그와 동행하던 어린 자식이 구걸하는 거지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동냥한다”고 빈정댑니다. 그는 “그들의 마음을 읽는 것은 네 일이 아니다. 네 일은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다”라며 자식을 꾸짖습니다. 그는 고급 양복을 입었으면서도 땅바닥에 앉아 노동자나 청소부와 어울려 식사하고,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접시 밑에 지폐를 슬그머니 놓고 맛있게 먹었다며 일어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출근 길에 끔찍한 사고를 목격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자기 눈 앞에서 대형 트럭에 치어 처참하게 죽는 것을 봅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망자의 살과 뼛조각을 하나하나 주어서 도로 위에 놓인 시신의 몸통 옆에 경건한 자세로 갖다 놓습니다. 생명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악명 높았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은 그가 반체제 활동을 하자 그를 납치해 아부살림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곳에서 1270명의 정치범들이 총살당할 때 그도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과 함께 그는 행방불명됩니다. 아내와 두 아들은 끝내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2017년 『귀환』으로 뉴욕타임즈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가 히샴 마타르가 그 사람의 아들입니다. 사라진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헤맨 20년의 실제 이야기를 실은 이 책 속에는 아버지가 살아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정신 속에 아버지를 뜻하는 희랍어 “파테르”는 “조상,” “선조,” “창시자,” 또는 “선각자”라는 의미지가 있었습니다. 특히 단체나 집단에서 정신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영향을 주고 이끌던 남자를 “파테르”라 칭했습니다. 그 결과 파테르는 핏줄이 아니어도 “삶의 무대에서 가정이나 사회의 대표가 되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아버지가 자식들의 정신 세계를 지도하는 길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돈이 아니라 겸손을 아낌없이 물려줘야 한다. 그는 젊은 자녀의 불순함을 꾸짖기 보다는 자신의 삶으로 경건함을 보여줘야 한다. 젊은이들만 아니라 나이든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훈계가 아니라 남에게 하는 훈계를 자신이 평생 동안 분명히 실천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아버지의 솔선수범의 삶이 자녀를 위한 최상의 교육이다고 말합니다. 주후 39-40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사회 지도자였던 필로는 아버지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자연의 올바른 원리에서 아버지와 남편의 힘은 동등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른 측면이 있다. 비옥한 밭에 씨를 뿌리는 것처럼, 남편의 힘은 영혼 속에 미덕의 씨를 뿌리기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자녀들의 마음 속에 선한 조언을 심어주고 그들이 명예롭고 덕이 있는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는 것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할 때 그는 유익한 교리와 함께 자녀들을 소중하고 지혜롭게 양육하게 된다.” 필로는 자녀들을 위한 이상적인 교육은 아버지의 선한 결심과 용감한 행동으로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고, 또한 훈육과 지혜의 부드러운 교리로 그것을 지지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아버지의 선한 삶과 행위는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절대 권위 소유자였으며 참 사랑의 모범이었습니다. 노예신분에서 해방된 에픽테토스는 아버지의 사랑에 관해 이런 내용을 기록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또 다른 자신과 같이 대하며, 자신의 어린 자녀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양육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주의 깊게 섬기며, 신들의 메신저와 포고자로서 일반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그는 가족을 위한 특별한 책임이 있고, 가족이 아플 때 돌보며 부양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최소한 아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용기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야 한다. 출산한 아내를 위해서 양털 옷, 기름, 침대, 그리고 물 마실 컵을 준비해야 한다. 공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람이 미래의 왕이 아니겠는가? 백성은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이런 왕을 신뢰하지 않겠는가?” 그에게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는 존재였습니다. 

   가족 개념이 강한 히브리인들에게 “아버지”는 법과 정의를 준수하는 삶을 스스로를 증명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미덕의 풍성한 소유자여서 권위자로 표현되었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언급할 때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아버지는 결코 하나님의 본성과 동등한 하지 않으며,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와 똑같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사회적으로 아버지의 역할과 비교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무조건적으로 의지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있으며 가정을 책임지고 돌보는 권위 있는 분이었습니다. 

   시편 저자는 “마치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을 깊이 사랑하듯이 주는 그를 존경하는 자들을 깊이 사랑하십니다”라고 기술합니다. 잠언 저자도 아버지의  하나님 닮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징계하시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하는 것같이 하신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근본 감정입니다. 호세아는 이 주제를 잘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린아이였을 때에 내가 그를 내 아들처럼 사랑하여 이집트에서 불러 냈다.” 호세아는 어린 아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시편 98편의 저자는 “내가 여호와의 크신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겠습니다”라고 시작하여,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구원의 바위시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모든 자료들은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함의 권위를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비행기가 다니는 저 높은 먼 곳을 하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지면과 떨어 지는 곳부터 하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늘이란 코에서 콧김이 나가는 곳이 하늘입니다. 하늘이란 여기 저기 온 사방을 뜻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문법상 추상 명사에는 복수를 뜻하는 “s”를 붙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heavens 하늘들”이라고 문법을 무시하고 “s”를 붙여 번역합니다. 욥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숨결이 내 코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옆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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