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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신앙의 덫,” 스캔들

“신앙의 덫,” 스캔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프로디테는 미와 사랑을 상징하는 바람둥이 여신입니다. 그녀는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오랫동안 화산 밑에 있는 자신의 대장간에서 생활하는 틈을 타서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 바람을 피웁니다.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가 두 사람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 사실을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립니다. 어린시절부터 발이 절룩거리고 추남으로 취급받아 마음에 원한이 쌓인 그는 강한 질투심에 사로 잡힙니다. 그는 두 사람의 분륜 장면을 덮치기 위해 비단처럼 가늘지만 찢어지지 않는 청동 사냥망을 만듭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두 사람이 정을 나눌 침대에 그물을 설치합니다. 그는 아내를 만나 할 수 있는 모든 웃음과 친절한 태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섬에 짧은 휴가를 다녀온다며 자리를 뜹니다. 아내 아프로디테는 속히 아레스를 초대하여 유쾌한 밤을 보냅니다. 새벽이 되자 그들은 벌거벗은 채 그물에 싸여 허공에 매달려 도망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모든 신들의 냉소와 심판에 따라 비참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리스 시인 호모는 헤파이스토스가 설치한 청동 사냥망처럼 비밀스럽게 설치한 덫이나 함정을 “스칸달론”이란 낱말로 표기했습니다.

   그 이후 이 낱말은 동물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 혹은 “올가미”를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덫 중에서도 “덫에 놓여 있는 미끼”를 “스칸달론”이라 불렀습니다. 스칸달론은 까치발 같은 도구나 막대기로 장치된 덫의 중앙에 놓였습니다. 동물이 덫 안에 놓인 스칸달론에 유인되어 막대기를 건드리게 되면  스프링의 진동으로  동물은 포획되거나 생명이 파괴됩니다. 고대 아테네의 대표적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단어를 논쟁에서 상대를 패배로 유인하기 위해 설정한 “언어적 함정”란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의 근본적 의미는 걸려 넘어져 작은 손상을 입는 “걸림돌” 이상으로 한 개인의 인생을 파멸로 유인하는 매혹적인 미끼였습니다.

   “추문,” 즉 좋지 않은 뒷소문의 뜻을 지닌 영어의 스캔들 (scandal)이 고대 희랍어 스칸달론에서  파생되었지만 그 의미는 서로 같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스캔들은 주로 남녀 간의 불륜이나  정치적 욕망과 관련된 사건인 것에 비해,  스칸달론은 생명의 파멸과 관계됩니다. 시편 141편 저자는 악한 자들이 자신을 죽음에 넘기기 위해 길 옆에 덫을 치고 함정을 팠다고 말합니다. 시편 140편에서도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라고, 스칸달론을 생명을 파멸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스칸달론은 길을 벗어나 타락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여 믿음을 잃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신앙의 덫” 혹은 “영적인 올무”라고도 표현합니다.

   신약 성경은 스칸달론의 생생한 세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신앙의 덫입니다. 신앙인이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어 그 사람을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경우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한 예를 듭니다. 일반 사람들도 금하는 특정 음식을 신앙인이 아무 거리낌 없이 먹는다면, 그 행위는 보는 사람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하지 않으리라.” “실족하게 한다”라고 번역된 희랍어는 스칸달론으로 양심을 상하게 하다 혹은 믿음을  버리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언행을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아우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두번째는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신앙의 덫입니다. 덫을 놓는 것은 다른 사람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가능합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문자적으로 손발을 자르고 눈을 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르고 빼도 인간의 욕망은 여전합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내 자신의 삶에 덫이 되는 모든 것은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생은 인간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긍정적인 신앙의 덫으로 예수님의 덫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덫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응하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다.” 자신들의 죄를 중단하는 것을 원치 않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덫이 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유를 다음 절에서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라고 밝힙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신앙의 덫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는 신앙의 덫이 되어야합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충성하는 사람은 세상을 향한 영적 걸림돌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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