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은혜의 행정, “경륜”

pink pencil on open bible page and pink

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은혜의 행정, “경륜”

“경륜”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오이코노미아”의 우리 말 뜻이 다소 모호하지만, 고대 희랍 사람들에게는 일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평범한 낱말이었습니다. 경제를 뜻하는 영어 이코노믹스는 이 낱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낱말의 문자적 의미는 “가정의 법칙” 또는 “가정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사회와 경제에 대 혁신이 일어났던 18세기후기부터 이 낱말은 “재산의 과학” 또는 “자산 관리”로 사용됩니다.  

   주후 1세기 그리스 작가들은 가사 관리 분야의 직업을 설명하기 위해 “오이코노미아”를 사용했습니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애굽의 바로 왕과 그의 꿈을 해석한 요셉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요셉의 분별력과 지혜에 놀란 왕은 그에게 기근의 때를 잘 극복하고 곡식을 오래 저장하는 비결을 묻습니다. 요셉은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좋은 곡식을 아끼고 대신에 백성들이 사치스럽게 소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궁핍할 때를 대비하여 백성들에게 식량 이상의 곡식을 주지 말아야합니다.” 요셉을 신뢰한 왕은 그에게 벼슬과 권세를 부여하여 왕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곡식 분배의 직임을 허락합니다. 한 나라의 살림 전체를 맡아 일하게 되는 요셉의 위치가 “오이코노미아,” 즉 경륜인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의 노예들은 종종 부유한 지주들의 집을 관리했습니다. 이 관리자를 “오이코노모스”라 칭했는데, 이들은 주인의 가옥이나 땅을 관리했습니다. 우리 말로 표현하면 “청지기,” “경영자,” 혹은 “매니저”로 번역됩니다.

   직업이 의사였던 누가 (Luke)가 주후 85년에 로마에 거주했던 기독교인들에게 쓴 글에는 “오이코노모스”가 누군지를 잘 보여줍니다. “어떤 부자에게 재산을 관리하는 일꾼이 있었는데, 이 일꾼이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래서 그를 불러다가 말했다. ‘내가 자네에 관해 들은 소문이 어찌된 일인가? 더 이상 자네를 일꾼으로 쓸 수 없으니, 자네의 일을 정리해 주게.’” 이곳에 언급된 “일꾼”이 “오이코노모스”인데 “청지기”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정을 관리하는 전반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청렴해야 하는 자신의 의무에 불충실했습니다. 이 이야기 결말에 저자는 진정한 청지기가 누군지를 정의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충실하다. 아주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충실하지 못하다.” “오이코노모스,” 즉 청지기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충성된 자세로 성실히 임하는 자임을 밝힙니다.       

   “경륜”이 하나님과 관계하여 사용될 때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 “구원의 경영,” 혹은 “구원의 순서”를 의미합니다. 영어 성경 KJV은 이 낱말을 하나님의 섭리로 번역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지배되고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리델과 스콧 희랍어 사전』은  이 단어를 “관리,” “운영,” “경영,” 그리고 “지배“로 설명합니다. 사람이 선한 목적에 따라 가정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에 따라 만물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계획 (오이코노미아)을 분명히 이루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 뜻대로 이루십니다.” 바울은 이 구원의 계획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람의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사람이 믿음으로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이 단어를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영”이라고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경영을 보여주는 한 농장 주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농장 주인은 자기 포도원에서 이른 아침부터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는 일꾼들에게 일반 사람이 받는 하루 품삯을 주기로 약속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오전 9시쯤에는 장터에 나가 빈둥거리며 서 있는 몇몇의 사람들을 불러 “당신들, 우리 포도원에서 일하시오. 적당한 품값을 주겠소”라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합니다. 이 주인은 다시 낮 12시와 오후 3시쯤에 길거리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합니다. 오후 5시에 장터에 간 이 주인은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지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 그들에게 이 주인은 “당신들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라고 말합니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 포도원 주인은 5시에 일을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품삯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각각 일반 사람이 받는 하루 품삯을 받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한 사람들은 더 많이 받을 것이라 기대하며 받은 품삯은 늦게 온 사람들과 동일했습니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일한 우리들을 왜 한 시간만 일한 저들과 똑같이 취급합니까?”라고 불평을 토로하는 그들에게 주인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요?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라서 당신들의 눈에 거슬리오?”라고 반응합니다.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품삯을 받는다는 계약을 하고 일했기 때문에 주인은 그들에게 잘못이 없습니다.  

   성경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경륜 (In God’s economy)에는 최혜국 조항이 없다”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 들어오든 늦게 들어오든, 젊음의 활기이든 황혼의 쇠약이든, 한낮의 열정이든 저녁의 시드는 것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은혜로 대우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정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관대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의인들을 용납하시는 것과 동일하게 죄인들을 환영합니다. 은혜의 행정은 인류 창조 후에 변치 않고 이어져 오는 하나님의 통치 방식입니다.   자비의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모든 자를 환대하십니다.  

이남규 목사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