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신앙의 멘토, “장로”

pink pencil on open bible page and pink

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신앙의 멘토, “장로”

고대 그리스 시인 호모 작품 『오디세이 Odyssey』에 “멘토 Mentor”가 등장합니다. 『오디세이』는 장기간의 긴 모험여행이라는 뜻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이면서 한 나라의 왕이었던 율리시즈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 “텔레마코스”를 나이든 늙은 종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그 종의 이름이 멘토였습니다. 왕 율리시즈는 가정의 모든 운영을 그에게 맡기면서 특별히 자신의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전쟁터로 떠났습니다. 오랜 전쟁을 끝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율리시즈는 깜짝 놀랍니다.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들이 훌륭한 국가의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특출한 인물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사이 아들이 유능한 국가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호모는 자신의 글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멘토는 마음이 넉넉하여 인자하고 온유하며 거룩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봉사정신과 올바른 시각을 보여주며 도전 정신을 불러 일으켰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멘토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왕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훌륭한 인물로 지도했습니다. 언어 뿐만이 아니라 삶으로 교육했습니다. 왕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나이든 멘토와 함께 살면서 그의 인격과 삶을 자신의 것으로 카피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한 나라 잘 이끄는 특출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디세이』에 서 “멘토”를 소개할 때 “나이 든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곳에서 “나이든”으로 번역되는 희랍어는 “프레스부테로스”입니다.   우리말 “장로”로 번역 되는 영어 “프레스비테르presbyter”와 “장로교”로 번역되는 “프레스비티에리언presbyterian ”이 희랍어 “프레스부테로스”에서 기원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는 연로한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부를 때 “장로”라고 칭했습니다. 젊은 세대들과 비교하여 나이가 들은 사람들로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장로라 불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작품 『에우데모스 윤리학』에서 장로의 특징으로 지혜가 있으며 선한 것과 신성한 것을 추구하며 꼼꼼한 성품의 행동가라고 설명합니다. 고대 유대 문화에서 장로의 역할은 두 영역이었습니다. 첫째는 신앙의 공동체를 책임지는 지도자였습니다. 출애굽을 시작하기 전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장로들에게 먼저 알립니다. 둘째는 사사기와 열왕기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장로는 이스라엘의 정치 총독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 장로들은 종교 지도 계층의 일부였으며 국가 범죄자를 판결하는 공회 (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프레스부테로스,” 즉 장로는 기본적으로 세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첫째, 장로는 젊은이들과 비교하여 인생의 경험이 많은 연장자입니다. 베드로가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할 때 “늙은 사람들,” 즉 장로들을 아들과 딸들 그리고 젊은 이들과 비교합니다. 이곳에서 강조점은 위치나 타이틀 보다는 나이입니다.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교회의 연로자들을 존경심으로 대하라고 권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도 “선진들,” 즉 장로들을 언급합니다. 이 경우, 장로는  인생의 경험 많은 사람들입니다.  둘째, 장로는 지역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베드로는 한 교회의 믿음의 본이 되는 지도자들을 “장로”로 표현합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라고 말한 후에, 베드로는 장로의 기능을 이렇게 언급합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장로는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이는 사람입니다. 셋째, 장로는 연약한 신자들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일의 일부는 질병으로 고통당 하는 병자를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장로의 일에 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양 떼를 잘 돌보십시오. 기쁨으로 그들을 돌보며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기쁨으로 섬기며, 돈을 생각하고 그 일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또한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은 장로들은 진정한 예배와 경배하는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장로는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로서 자신의 삶을 통해 신앙의 본을 보이며 신앙에 입문한 어린 사람들을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자들입니다.

   “내일의 크리스천 리더십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한 헨리 나우웬은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힘을 포기하는 리더십”이라고 표현합니다.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장하며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요구에 이끌려 간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했던 최고의 지성으로부터 이제 말도 거의 하지 못하는 사람들, 기껏해야 우리 사회의 바닥에서 맴도는 사람들에게 옮겨왔다. 정신 장애인들과 한 집에 살게 되면서 맨 처음 나를 놀라게 한 일은 그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그 때까지 내가 해 왔던 탁월한 업적들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나의 글에 감동을 받은 사람도 없었고, 그들 가운데 학교를 다녀본 사람들이 없었기에, 나를 소개하는 노틀담, 예일,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가르쳤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교파를 초월한 무시 못할 나의 세계적인 활동들도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자신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기독교 리더자라고 강조합니다. 교회의 연장자, 즉 장로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신앙이 나를 통해서 자라도록 내가 밑거름이 되는 분입니다.  

이남규 목사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