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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믿음의 증거,” 순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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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증거,” 순종 (3) 

믿음의 사람들은 행동가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길을 떠납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지체없이 아들을 희생 제물로 드리기 위해 칼을 듭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는 말씀과 함께 “너는 잣나무로 배를 만들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일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 가기 위해서는 전쟁은 불가피했습니다. 전투를 준비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위해 첨단 무기와 훈련된 군인을 준비시키는 것 대신에, 여리고 성 주변을 일주일 돌 것을 말씀합니다.  여호수아는 아무 의심 없이 곧 행군을 시작합니다.  “네 몸에 걸친 베옷을 벗고 네 발에서 실을 벗어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사야 선지자는 곧바로 행동에 옮깁니다. 성경은 “내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맨 발로 다녔다”고 기록합니다. 요셉과 약혼했던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네가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하자,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때는 혼전 임신은 투석형을 당하던 시기였습니다. 가나안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께서는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고 말씀합니다. 하인들은 곧 실행으로 옮깁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이런 행동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위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순종의 행위로 믿음을 보여준 경우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 사건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두번이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엎드려 기도합니다. 기도 후에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에 사용된 동사들의 주어는 모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행위를 결단하셨습니다.  

   “순종”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휘파코에”는 신앙의  결단과 연결되어 사용됩니다. 로마서 6:16은 이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의의 종이 되든 죄의 종이 되든 그 원인은 개인이 의지로 선택한 결단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부자 간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결국 이 낱말은 한 개인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증거되는 신앙의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순종하는 행동가로 변화됩니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순종은 믿음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끝까지 순종합니다.   이 영적 진리의 단면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 명백하게 본질적인 것은 한 방향으로 오랜 순종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이 있어야 하며, 그 때서야  인생에 살 만한  가치 있는 결과가 있게 마련이고, 또한 오랜 세월 동안 그래 왔다는 것이다.”  믿음의 아름다운 세계는 순종의 행함을 통해 밖으로 나타납니다. 야고보도 이 원리를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어리석은 여러분,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걸 모르시겠습니까?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침으로써, 그가 행한 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그의 믿음에는 행함이 함께 따랐으며, 그의 행동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받으셨으며,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라는 성경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후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렸습니다. 또 라합의 예를 들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기생이었지만, 자신이 한 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그녀의 집에 들여, 다른 길로 도망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위 즉 순종함으로 그 생명력이 밖으로 보여집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순종의 행동을 인간의 몸과 영혼에 비교합니다. 그는 믿음은 사람의 몸에, 그리고 순종의 행동은 인간의 영혼에  견줍니다.  사람은 이 둘이 반드시 있어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몸이 죽으면 영혼은 떠나고, 역시 영혼이 떠나면 몸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믿음이란 순종하는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순종의 행위가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순종의 행위로 내 믿음을 보이리라”고 말합니다. 절대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명확하게 믿음은 순종의 행위로 온전케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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