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완전 지불,”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pink pencil on open bible page and pink

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완전 지불,”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유함을 드러내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큰 길 거리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금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얼굴을 흉하게 하는 사람들을 향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시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 문장에서 “상을 받았다”는 낱말은 희랍어 “아페케인”을 번역한 것으로 “완전히 지불 받았다”는 전문 용어입니다. 고전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이 단어가 쓰인 용례는 아페케인의 의미를 선명하게 해 줍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시인이었던 칼리마코스 작품 속에 이 낱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자신의 선한 간호사였던 프리지아 여성 아이슈라가 살아 있는 동안, 미쿠스는 늙은 나이에 있는 그녀로부터 최상의 돌봄을 받았다. 그녀가 사망한 후에, 미쿠스는 후대들이 볼 수 있도록 그녀의 동상을 세웠다. 그래서 그 늙은 여성은 자신의 예의와 기품 있는 간호에 대한 완전한 감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렸다.” 그 노파는 애정이 깃든 돌봄에 대한 감사의 보상을 완전하게 받았던 것입니다. 칼리마코스의 동일한 작품에는 치유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로부터 자기 아내의 병을 치료받은 한 남성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스클레피우스, 에세손이 자기 아내 데모디스를 위해 서약으로 당신에게 빚졌던 모든 빚을 당신이 다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사실을 잊고 다시 지불하라고 요구할 경우 이 패 (tablet)가 증명할 것입니다.” 그 패는 빚은 모두 지불되었다는 증거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의 이야기에도 아페케인이 쓰입니다. 아테네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테미스토클레스는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받았습니다. 스파르타 도시에서는 그에게 지혜의 상을 수여했습니다. 올림픽 축제가 열릴 때, 테미스토클레스가 경기장에 입장하면 군중들은 경주하는 선수들보다는 그를 더 응시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손으로 가리키며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그는 기뻐하면서 경기장에 동행했던 친구에게 이제 자신이 헬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애썼던 수확을 충분히 거두고 있다 (아페케인)고 고백했습니다. 그를 향한 사람들의 존경이 그가 국가를 위해 싸웠던 모든 노고에 대한 완전한 보상이었었습니다.   

   그러나 아페케인은 상거래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이 낱말은 “완전히 지불된 납부금”을 의미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말로는 “~의 지불금을 받다”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어의 개념과 의미를 설명하는 렉시콘 (Lexicon)은 이 단어와 연결되어 사용되는 충분한 예들을 소개합니다. 아페케인은 건물이나 땅을 빌려주고 거래하는 “임대료 납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건물 주인이 세입자에게 “나는 당신이 나에게 준 열매 (지불된 현물)를 많이 받았으니(아페케인), 나는 당신에게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노라.” 이 단어는 또한 “세금 납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거주 외국인은 세금을 납부하고 수령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파마리스, 헤르모도르스의 아들이 아보스에게. 나는 당신으로부터 외국인 세를 받았다 (아페케인).” 이 단어는 “종교세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단어는 “노예 가격 지불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노예를 판매한 사람은 “나는 모든 값을 받았다 (아페케인)”는 영수증을 썼습니다. 아페케인의 사전적 의미는 모든 비즈니스 거래에서 “완전 지불”을 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에게 관심과 칭찬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선을 베풀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행위는 사람에게 받은 것이 그들이 받을 모든 것이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완전 지불”을 받은 것입니다. 받아야 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이미 다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주장할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영수증을 작성해서 “전액을 다 받았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다 받게 되면, 더 이상 받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어떤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가 개인의 명성을 얻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의 것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이미 완전 지불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고 이타적이며 은밀하게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훨씬 더 큰 하나님의 보상은 완전히 놓치게 됩니다.  

   성경에는 사람에게 완전히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을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경우를 소개합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 가운데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동일한 상황을 세 번씩이나 반복한 후에, 예수님께서는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 되었다”는 말은 희랍어 아페케인을 번역한 것입니다. 여러 영어 성경들은 이 단어를 “충분하다”라고 번역합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유다의 도착을 묘사합니다. 아마 “충분하다”는 단어는 가룟 유다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는 돈을 다 지불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찾고 있는 대가가 이것이 전부냐?”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 더 있다는 것을 유다에게 상기시켰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지불을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완전 지불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빌레몬의 경우입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는 주인 몰래 도주합니다.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씁니다. “오네시모가 잠시 동안, 그대의 곁을 떠났지만, 이 일은 어쩌면 그를 영원히 그대 곁에 주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이제 믿음의 형제로 다시 데려온다면, 그는 이 일시적인 세상에서 노예 한 명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를 영원한 형제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남규 목사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