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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복음 ①, “전쟁 승리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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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전쟁 승리의 소식”

데메트리오스는 고대 아테네 사람들에게 수호신으로 숭배된 인물입니다. 그가 이집트와 싸운 해상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을 때, 그는 죽은 자를 장엄하게 장사해 주고 포로들을 해방시켰으며 아테네 시민들에게는 전리품에서 1,200 벌의 방호복을 나눠줬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왕에게 그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신하들 중에 말 잘하는 아리스토데모스를 특별 사자로 뽑아 보냅니다. 그 신하는 전쟁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안티고누스 왕 앞에 엄숙한 모습으로 나아가 오른 손을 든 체 “안티고누스 왕 만세! 만세!”라고 큰 소리로  승리의 소식을 전합니다. 왕은 “하늘이여 만세!”를 외친 후에 “네가 전한 좋은 소식에 대한 보상은 곧 주어질 것이다”고 약속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별은 모든 백성에게 기쁨의 소식이었고, 이 소식을 “유앙겔리온”이라 불렀습니다. 한국 성경은 “복음”으로 번역합니다.

   그리스 고전 문학에는 전쟁의 소식을 기록하고 설명하는 내용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자 (使者)의 출현은 곧 그가 온 백성에게 기쁨의 소식을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승리의 기별을 전하는 사자는 이렇게 묘사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빛이 났고, 그의 창은 월계수로 장식되었으며, 그의 머리에는 면류관이 씌워졌고, 그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승리의 소식이 선포되자, 도시 전체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졌으며, 성전은 화환으로 덮여졌다. 축제의 제사가 열리고, 제물들 위에는 왕관이 씌어졌고, 사자는 재물과 함께 큰 영광을 얻었다.” 복음은 온통 축제를 일으킵니다. 

   기쁨의 소식 혹은 환희의 기별로 번역되는 희랍어 유앙겔리온은 “승리의 소식을 가져오다” 혹은 “승리를 선언하다”는 히브리어 “바샤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모든 셈족 말은 이미 발생된 좋은 일을 전달할 때 공통되게 “바르샤”를 사용했습니다. 고대 유대인 사회에서 이 낱말은 아기가 태어난 소식, 병자가 고침을 받은 소식,  위험에서 구조된 소식을 알릴 때 쓰였습니다. 인접 부족들과 전쟁이 잦았던 시대에  “전쟁에 승리한 소식을 가져옴,” 혹은 “전쟁의 승리를 선언함”을 나타낼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아들과 남편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장에 징집되어 걱정과 근심이 온 나라를 짓누르고 있을 때, 전쟁터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 사자 (使者)가 “우리 군이 승리했다. 적군을 물리쳤다”고 외칩니다. 이 사자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로 불렀습니다. 

  다윗 왕의 군대는 왕을 반역한 신하들과 손잡은 그의 아들 압살롬의 군대와 에브라임 숲에서 전쟁합니다. 다윗 왕은 전쟁을 이끄는 지도자들에게 “어린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하라”고 명령합니다. 전쟁은 시작되었고, 왕의 군대가 승리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이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왕께 달려 갑니다. 왕은 달여 오는 그를 보고 “아히마아스는 좋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오는 소식은 반드시 좋은 소식일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는 왕께 절을 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보고합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 왕에게 대적하는 사람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왕의 “어린 압살롬을 잘 있느냐”는 왕의 질문에, 그는 압살롬이 있는 곳에 소란이 있는 것을 보았지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 때 전쟁터에서 달려온 구스 사람이 “내 주 왕이시여!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왕은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구스 사람은 “왕의 원수들과 왕을 해치려 하는 사람들은 다 그 압살롬처럼 되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합니다.그 보고를 들은 다윗 왕은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통곡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은 전하는 사자에게 유앙겔리온이었습니다. 이 말의 내용은 현실에서 실제와 동일하게 나타나는 효과와 능력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 그 자체만 전했던 아히마아스는 나중에 솔로몬 왕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고 납달이 땅을 취하는 장관이 됩니다. 그가 전한 기쁜 소식은 자신에게 기쁨으로 나타났습니다. 승리의 소식과 함께 죽음을 말했던 구수 사람은 다윗왕의 심판으로 사형당하게 됩니다. 좋은 말은 기쁨을 생산하지만, 나쁜 말은 근심을 일으켜 종말을 가져옴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앙겔리온은 “희소식을 위한 보상”으로도 사용됩니다. 다윗 왕에게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던 아말렉의 젊은이는 자신이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지만, 다윗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그를 시글락에서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가지고 오는 자는 그런 보답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덧붙입니다.  유앙겔리온이라며 나쁜 소식을 전했던 이 젊은이는 그 보응으로 죽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앙겔리온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현실로 응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유앙겔리온, 즉 기쁨의 소식을 현실로 이루는 주체는 여호와였기 때문입니다. 

   유앙겔리온에서 가장 의미 심장한 내용은 선언하는 말의 내용을 현실로 이뤄지게 하는 요소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분은 여호와라고 알립니다. 여호와가 모든 전쟁에 승리자입니다. 승리의 근원이 여호와이며, 인간 영혼이 갈망하는 기쁨 소식을 여시는 분이 여호와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아름다워라. 기쁜 소식을 가지고 산을 넘어오는 사람이여. 아름다워라. 평화를 선포하며,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구원을 선포하는 사람이여. 아름다워라. 시온에 ‘네 하나님은 왕이시다’라고 전하러 다니는 사람의 발이여. 폐허로 변한 예루살렘아, 이제는 소리를 높여 다 함께 기뻐하여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하셨으니 즐거워하라.” 전쟁으로 강자들에게 처절하게 무너져 일어날 수 없는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는 주체는 여호와입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말, 즉 유앙겔리온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말의 알맹이를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여호와의 능력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의 입술에 복음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첫 문장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썼습니다. 유앙겔리온을 복음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성경들은 이 단어를 다양하게 번역합니다. NRSV는 “좋은 소식 the good news”로, Living Translation은 “놀라운 이야기 the wonderful story”로, 그리고 Darby Translation은 “기쁨의 물결 the glad tidings”로 번역합니다. 굉장한 기쁨인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마가는 한 개인, 한 가정, 한 민족, 그리고 온 나라에 놀라운 기쁨의 물결을 일으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이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삶의 전영역에서 발발한 전쟁을 통쾌한 승리와 함께 큰 기쁨을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유앙겔리온 즉 복음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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