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
상당수 초대교회 성도들은 계시록 19장 11절이하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백마 타고 오셔서 제국을 멸망시키실 것이고, 그렇게 제국이 멸망하면 이 땅에 천년 동안 이루어질 천년왕국을 기대했다. 그래서 초기 300년 동안은 예수께서 재림할 것을 기다리며 이후에 이 땅에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천년왕국을 기대했다. 재림 전의 천년왕국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다 주후 313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이후 복음은 제국 내에 급속히 퍼져 급기야 4세기 말에는 기독교 국가화 되었다. 이때 교회는 이 사건을 로마 곧 바벨론의 멸망이라고 이해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이 오시고 천년왕국이 이루어져야 할 일이 남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은 오지 않았다.
이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주후 410년 8월 24일 서고트족이 주전 387년 이후 약 800년간 한 번도 침략당한 적이 없던 로마를 침공하여 사흘간 대대적인 약탈을 감행하였기 때문이다. 로마는 지난 800년간 전세계를 압도적인 힘으로 제패해 왔던 신성한 제국이었다. 제국의 시민들은 로마는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도성이고 영원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신성하고 영원한 이 도성이 이방민족의 침입으로 무너질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해 그동안 기독교의 국교화에 못마땅해 하던 상당수 이교도인들은 영원한 로마가 무너진 이유가 도리어 기독교 때문이라고 원망의 화살을 돌리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충격적 사건 이후 로마는 더이상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라는 회의론이 팽배했고, 도리어 기독교는 로마 멸망의 주범이라고 공격받았던 것이다.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시 히포의 주교였던 어거스틴은 이러한 회의론에 대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을 저술하였다. 핵심적인 결론은 자기를 사랑하는 세상 나라인 로마가 곧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며, 세상의 나라는 망해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 땅의 부패하고 악한 로마와 하나님의 도성을 구별하며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실 것이라 변증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의 세상 나라 즉 로마 가운데 교회를 통해 공존하고 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불완전하게나마 나타나기는 하지만, 교회가 곧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교회는 도리어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에 가깝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이미 천상에서 시작되었지만 그의 재림 때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이후 교회는 문자적 전천년왕국을 배격하고, 영적 천상통치를 주장하는 무천년설이 주도적인 종말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종말론의 소중한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