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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늘향한책읽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하늘향한책읽기_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열림원, 2021

언어기호학자, 언론인, 비평가이면서 소설가, 시인, 행정가, 크리에이터의 삶을 살아가는 1934년생의 이어령 교수는 작년에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었고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런 그에게도 암이라는 질병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쳐들어 왔다. 복막에서 시작된 암이 여러 곳으로 전이가 된 상태인데 수술도 방사능 치료도 항암치료도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위암 발병 후에 수술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책을 쓰고 강연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 이민아 목사의 그 길에 동참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진 그에게 자신의 평생의 연구와 지식의 총합을 선물처럼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71년생이며 27년째 기자로 활동 중인 저자 김지수는 2015년 부터 진행한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로 누적 조회수 1,000만을 돌파할 정도로 인터뷰에 강했다. 그런 강점은 이어령 교수와의 ‘라스트 인터뷰’를 할 수 있게 했다. 이 인터뷰는 가을 단풍이 시작될 때 시작하여 겨울 산, 봄의 매화 그리고 여름 신록의 시간까지 진행되었고 총 16개의 인터뷰로 정리되어 우리 눈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는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서 대학자의 곁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자신에게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독특한 이 과외수업은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이라는 커리큘럼으로 탄생하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제목이 되었다.

이 마지막 수업은 사전에 정해진 주제를 선정하지 않고 그날그날의 상념을 꺼내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난, 행복, 사랑, 용서, 꿈, 돈, 종교, 죽음, 과학, 영성 등의 주제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지성과 영성이 부딪쳐 스파크가 일어나고 그 때에 우수수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모아도 남은 인생이 허기지지 않을 것 같다고 저자는 감탄한다. 이 책은 기독교 서적으로 출판되지 않았다. 인문, 사회, 역사의 카테고리를 지닌 인문학 책이다. 그럼에도 예수님 앞에 회심한 이 시대의 지성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진실과 지혜는 그 어떤 신앙서적보다도 신앙적이고 그 어떤 신학서적보다도 신학적이었다.  

저자가 표현하는 것처럼, 이 글을 읽노라면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감정의 근육과 지성의 근육이 자극 받기 시작함을 느끼게 된다.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면 경련이 일어나고 뒤틀리고 꿈틀거리게 되는데 그런 짜릿하고 충격적인 느낌을 고스란히 이 책의 독자들은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어색함과 불편함이 오히려 우리의 모세혈관까지 엔돌핀을 돌게하여 우리의 감정과 지성은 더욱 더 높은 강도의 경련을 기대하며 더 강한 근육이 되어감을 느끼게 된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그는 나의 흉곽과 나의 뇌곽을 뒤흔들어 ‘최대치의 나’로 넓혀갔다. 스승을 만나기 전까지 나의 빌려온 진실은 빌려 입은 수의만큼이나 부질없다고 느꼈다. 이제 나는 나에게 꼭 맞는 영혼의 속옷을 찾았다.”

저자는 그래서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특별한 수업의 초대장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령 이라는 독보적인 존재를 스승으로 두기를 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스승이 전하는 메시지를 고이 담아 확성기를 통해 전달한다. 인터뷰는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진정하는 자의 생각과 질문이 융합되고 부딪치고 정제되는 과정이 들어가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질문이 돋보인다. 또한 이런 질문에 그 한 순간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으며 이어령의 위로하는 목소리, 꾸짖는 목소리, 어진 목소리로 답을 이어나간다.  

죽음을 향해가는 이어령 교수는 “나 절대로 안 죽어”라는 말을 쏟아낸다. 어떻게 들으면 참으로 오만 방자한 말일 수 있으나 정말 부활의 때에 그리스도인이 내뱉을 영생에 대한 강력한 믿음에서 터져나오는 외침이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죽음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 오늘 처음 알았다’고 하는 자기 고백적인 말이 튀어나온다. 이것이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을 들은 이가 내놓을 그 한마디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남겨진 생의 시간 가운데 해야 할 말과 들어야 할 말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의 허기진 마음을 가득채우기에 흡족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우리의 인생을 새로운 시각과 각도로 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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