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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늘향한책읽기] 빈 배_노희송

하늘향한책읽기, 노희송, [빈 배], 두란노, 2022

모든 것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빈 배’는 가히 충격적인 단어다. ‘빈 배’는 우리 시대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며, 실패자의 또다른 말인 것처럼 들린다. 만선을 기대하고 나간 배가 빈 채로 부두로 들어오는 것을 누가 반기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득 찬 만선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현대의 크리스천들에게도 ‘빈 배’는 손사래를 치게 하며,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왜 ‘빈 배’라는 제목을 책 제목으로 선택한 것일까.

저자인 노희송 목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하여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보낸다. 미국에서 목회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하고 토론토 큰빛교회 영어 회중들의 담임목사로 청빙받게 된다. 큰빛교회 2대 담임목사인 임현수 목사는 북한 선교에 더 집중하고자 노희송 목사를 동사목사로 5년 간을 함께 사역하며 담임목사로서의 준비를 돕는다. 저자는 2014년에 한국어권 3대 담임목사로 청빙되어 공동의회에서 위임투표까지 리더십 승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은혜를 경험한다.

그런데 담임목사로 결정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생각지도 못한 일에 맞닥뜨린다. 북한에 선교 차 방문했던 임현수 목사가 북한에 억류되면서 재판 받고 북한 감옥에 투옥된 것이다. 어찌 이런 날벼락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을까. 포복절도할 웃긴 이야기를 들어도 속시원히 웃을 수가 있었겠는가. 늘 신경이 곤두 서있게 되고, 무심한 쏟아낸 말들로 인해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고, 설교를 어떻게 해야 교인들의 눌려 있는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지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 것이다.

억류된 지 2년 7개월 후에 임현수 목사는 석방되고 캐나다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던 시기에 순간 순간을 묵묵히 이겨내야만 하는 저자는 살얼음판을 걷는 조마조마함으로 버텨내야 했다. 그런 날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교우들과 묵상하고 함께 예배시간을 통하여 설교하였던 성경 속 베드로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가능하였다.

저자는 베드로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밤새도록 수고하며 그물을 내렸지만 물고기 한 마리 건져 올리지 못했던 베드로의 배에 예수님은 오르신다. 베드로의 ‘빈 배’가 예수님께서 들어와 앉으실 수 있는 축복의 공간이 된 것이다. ‘빈 배’와 같은 현실을 살아내던 저자는 인고의 시절을 지나며 맷집도 강해진다. ‘빈 배’도 괜찮다는 것이다. ‘빈 배’라야 예수님이 올라오실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배에 무엇인가 가득 채워져 있다면 과연 예수님을 그 배에 타시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빈 배’로 모신 예수님과 함께 베드로는 풍랑도 경험하게 되고,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기도 한다. ‘빈 배’처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가고 있을 때에 라야 이 배에 예수님만 타셔도 충분하다는 진솔한 삶을 배우게 된 것이다. 고난의 순간을 버티어 내면서 저자는 ‘이끄심’에 매료된다. 주도하지 못할 때 인간은 좌절을 느끼게 되지만 이제는 ‘빈 배’에 예수님이 오르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삶이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교훈을 얻게 된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단어가 ‘이끄심’이다. 이 책의 부제를 “이끄심을 경험하는 삶”이라고 할 정도로 책의 각 장과 주제마다 ‘이끄심’이라는 단어를 저자는 듬뿍 활용한다. 그만큼 저자에게 ‘이끄심’이라는 단어야 말로 자신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님과의 여정을 설명할 가장 적합한 단어였던 것이다.

‘빈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와 누구여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된 저자는 ‘빈 배’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의 따뜻한 언어로 알려준다. 상대적 박탈감 속에 좌절하는 그 곳이 바로 예수님의 역사가 시작될 곳이며, 주님을 만날 소망의 자리라는 것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신윤희 목사(하늘향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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