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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인생의 터닝 포인트 – 사도 베드로(눅5:1-11)_토론토 한인 열린교회 김초희 목사

인생의 터닝 포인트 – 사도 베드로(눅5:1-11)

토론토 한인열린교회 김초희 목사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삶의 형식이 달라지는 기회들을 몇 번은 만납니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의 목표를 바꾸는 사람이 있고 또 몇 번의 기회들도 지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실패했을 때,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의 제자 사도 베드로의 터닝포인트을 재평가해 봅니다.

부르심이 달랐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눅5장에서 목양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은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들어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배들은 출항하는 배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을 씻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타시고 그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부탁하십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날 시몬과 그의 동료 어부들은 밤새 수고하였으나, 물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자기의 상황만 생각한다면 거절이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마음이 넉넉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자기의 배도 내어드리고 예수님의 요구도 들어줍니다. 성경은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어떤 상황이든지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면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의 소유이고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수확이 없어 그 누구의 부탁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말입니다. 

육체는 피곤하고 지친 상황이지만 영혼이 곤고한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영혼이 갈급한 사람은 자기 영혼의 공급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압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됐던 일 이어도, 말씀에 의지하는 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실 때, 내 경험으로는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려보겠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순종 뒤에 엄청난 수확이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너무 많아 두 배에 가득차서 배가 잠길 만큼 되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했더니 수지가 맞았습니다. 이 물고기를 얼마에 팔까? 우와 이 분을 놓치지 말아야 되겠다. 계속 지도해 주십시오. 그는 비즈니스하는 사람인데도 그렇게 반응하지 않고 다르게 반응합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기에 놀랐는데 시몬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이 분은 나 같은 죄인과 함께 할 분이 아니다. 주님 나를 떠나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를 부르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시몬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두 배에 가득한 물고기도 배도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목야의 가장 큰 것은 리더가 되기 전에 먼저 따르는 것입니다. 팔로우하는 것입니다. 따르며 배우지 않고는 리더로 서기 어렵습니다.예수님은 결코 이 일을 생략하지 않으십니다. 시몬 베드로 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이 기간이 반드시 필수코스인 것입니다. 

아는 것이 달랐다. (마16:13-20)

마1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고 하더이다. “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예수님은 항상 객관적인 질문과 주관적인 질문들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것만으로는 가르침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주관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배움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 시몬 베드로는 이때, 시몬에서 베드로로 이름이 바뀝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즉각적으로 그에게 복을 서포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다. 그렇습니다. 그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배울 지혜가 여기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신속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빠르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물고기 많이 잡혔다고 놀라고 있을 때, 베드로는 이미 행동하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영혼이 민감한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눈 돌리고 있을 때 베드로는 자기 영혼에 주신 음성에 귀 기울이고 다른 이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고백에 축복하십니다. 너에게 복이 있도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네 이름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러분과 제가 섬기는 예수님을 어떻게 아느냐에 따라 우리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들만 고백하고 시인하고 인지하고 살면 오늘 이 말씀의 복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을 알고 고백하면 우리 모두는 다 천국의 열쇠를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말씀의 복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열쇠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어야 합니다. 천국의 열쇠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천국 열쇠를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망에서 구원하여 생명으로 인도하며 영원한 천국을 주시는 것을 전파해야 합니다.  천국 열쇠를 가진 사람들의 특권은 이런 것입니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결정권이란 엄청난 것입니다. 그 결정권을 주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주시면서 예수를 그리스도요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님은 비로소 자기가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는 것이 달라지면 주님께서 우리와 공유하시는 것도 달라집니다. 

가르침이 달랐다.(마18:21-22)

용서하는 것은 목양의 기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구원을 생각하셨기때문입니다. 마18:21-22 말씀은 형제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하는 것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것에만 집중했지 우리에게 누군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기준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 번만 용서해 준다든지 기분에 따라 상대가 진심으로 용서를 빌 때까지 용서하는 것을 미루어 둡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면 처음에는 너와 그 사람하고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가지고 옵니다. 형제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줍니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용서는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 눈 속의 들보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푸는 것이 무엇이든지 하늘에서도 우리가 푸는 것만큼 풀린다고 말씀하시면서 거기에 옹서도 포함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목양은 실패를 통해서 배웁니다. 실수와 실패는 우리 삶을 겸손하게 합니다. 눅22:31-34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담대하게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 내가 주와 함께 감옥에도 가고 죽는 곳에도 가기를 각오했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베드로야 네가 오늘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베드로 사도는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맹세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탄이 베드로의 마음을 흔들면서 그는 실패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속에서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리는 우리의 믿음을 닮았습니다. 우리도 장담하지만 얼마나 자주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을 제외시키는지 우리가 압니다. 

베드로 사도가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은 베드로 사도가 주님을 그 현장에서 보았을 때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다른 믿음의 형제들을 지켜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부탁합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의 믿음을 굳게하라. 주님은 모든 것을 아셨기에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로마서 8:26절에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여 주신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지 알지 못해도 성령께서는 우리 기도를 도우신다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영혼이 민감한 사람입니다. 그는 실패속에 있어도 먼저 자신의 영혼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우리의 골수를 쪼개며 의로 교육하기에 충분합니다. 실패속에서 전능자에게로 나아갔던 베드로 사도처럼 우리도 나아갑시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모든 순간에 우리 자신을 순종하도록 영혼이 민감한 사람들이 됩시다.

금요 성경강의 – ‘부르심이 다른 사람 베드로 사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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