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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하나님의 형상』 The Image of God(창세기 1:26-31)_밴쿠버예수사랑교회 장현철 목사

『하나님의 형상』 The Image of God(창세기 1:26-31)

밴쿠버예수사랑교회 장현철 목사

제가 교회를 개척하기 전, 밴쿠버 항구에 들어오는 선원들에게 3년 동안 복음을 전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부분 선원은 이구동성으로 밴쿠버 항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라고 말했습니다. 특별히 대형선박을 타고 온 바다를 다니는 선원들은 더욱더 그렇게 말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밴쿠버 항구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느 정도 커야 대형선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항구에 갔는데, 설탕을 싣고 온 배를 보았습니다. 220만 톤이라고 했습니다. 얼마의 양인지 감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선장님이 쉽게 쌀 40kg로 55,000,000(5천 5백만)포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이니까 1포씩 가져가고 5백만 포가 남는 양입니다. (요사이는 1포에 40lb짜리 18kg임) 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형선박도 태평양을 건널 때 큰 파도가 밀려오면 이쪽, 저쪽으로 종이배처럼 요동을 친다고 선원들은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배 안에 물건들을 유심히 보니 모두 다 배의 본체에 붙어 있었습니다. 의자도, 식탁도, TV도, 침실의 침대도, 모두가 다……

그 당시에 신학교 동기요, 나이도 같은 유학을 온 친구 목사님이 씩씩한 아들, 자기를 쏙 빼닮은 아들을 하나 얻었습니다. 둘째와는 거의 10년의 차이가 납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었지만, “캐나다에 왔으니 시민권자 하나 주십시오”. 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축하해 주기 위하여 병원에 갔더니, 친구 목사가 하는 말 “장 목사 캐나다에서 아기를 하나 낳으면 좋은데” “왜 그런데?”하고 묻자, “아기의 탯줄이 엄마에게 붙어 있는 상태를 보아야 생명의 신비도 깨닫고, 아내의 고통도 알고……” 아기는 뱃속에서 어머니의 탯줄에 붙어 있습니다. 그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고 사랑을 공급받고 완전한 아기로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아이가 밖으로 나오면 탯줄을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엄마의 사랑의 탯줄에 아이는 붙어 있습니다.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의미

육상 동물 중에서 기린이 길이가 무려 60cm 되는 가장 큰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5m가 넘는 머리까지 피를 올려 주려면 강한 심장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머리에 피가 공급되지 않아 졸도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기린은 혈압이 아주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높은 혈압은 기린이 물을 먹기 위하여 긴 목을 구부리면 피가 머리로 쏠려 뇌출혈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어려움 없이 기린은 잘 삽니다. 자동으로 혈관 밸브가 작동해 뇌에 피가 모이지 않게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어떻게 진화되어 이런 장치가 만들어지겠습니까. 그러나 기린에게는 하나님의 형상, 모양은 없습니다.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형상, 모양이 있습니다.

창세기 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온갖 종류의 동물과 새, 그리고 물고기를 만드신 것처럼 사람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은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사람이 중심인 이유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최고 걸작품입니다. 이 진리는 세상의 종교와 철학과 지식에서 얻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1) 닮았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무엇일까요? 형상이란 말이 3번, 모양이 1번 나옵니다. 먼저 히브리 말에 형상은 ‘첼렘’이고, 모양은 ‘데무트’인데, 말의 의미의 차이가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사람이 닮았다는 말입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교사가 되기 위한 실습으로 대구시의 계성중학교에서 실습 교사로 가르칠 때입니다. 중2 어느 반을 가르치고 그다음 시간에 다른 반에 갔었는데, 앞반에 있었던 한 학생이 제일 앞자리에 또 앉아 있었습니다. “너 여기 왜 또 왔어?” 그 학생 대답하기를 “저는 이 반에만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아니야. 지난 시간에 어느 반 교실에서 수업받았잖아.”라고 하자, 그 아이의 옆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낄낄거리며 “선생님예, 걔들요 쌍둥입니더.”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똑같이 닮았기 때문에……

저의 형제는 4형제입니다. 터울이 만 3살씩 됩니다. 저는 막내로 태어났기에 위로 형님만 세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제가 자랄 때, 큰형과 둘째 형, 이렇게 세 명만 있었습니다. 바로 위에 셋째 형은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저희 아버지께서 둘째 형과 셋째 형을 각각 다른 먼 곳에 두고 와 버렸다고 합니다. 그것도 어머니 몰래…… 살기는 어려운데 아들들만 있으니? 웃지 못할 사건입니다. 집에 온 어머니는 갑자기 아이 둘이 없자 동네방네 다니면서 찾았습니다. 아무도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는 엄청 두 분이 싸우셨습니다. 

6살인 둘째 형은 수 십리 길을 울면서 일주일 걸려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둘째 형은 이일을 저에게 울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둘째 형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겠습니까. 셋째 형은 3살이니 어떻게 다시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어머니와 형들과 함께 셋째 형이 사는 곳을 갔습니다. 그 동네에 가니 아주머니들이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현국이 하고 너무 닮았네” “현국이 낳은 엄마하고 형들, 그리고 동생이 왔다면서……” 저는 처음으로 바로 위의 형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닮았습니다. 우리는 형제가 분명했습니다. 어머니는 한쪽 구석에서 계속 울기만 하셨습니다.

2) 함께한다.

하나님의 형상, 모양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는 늘 하나님과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보내시어 사람들에게서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 모양을 새롭게 회복시키시는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 ‘임마누엘’인데,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라는 뜻에서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해서 자기의 친아들을 키우지 못한 어머니의 심정을 저는 어려서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의 심정을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생활이 힘들었으면 아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만 했겠습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셋째 형은 부모님이 자기를 버렸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셋째 형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친부모의 사랑을 받고 친형제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무엇입니까? 함께 하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친자녀를 어떤 이유로 버릴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닙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버렸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버렸지, 주님이 베드로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렸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 모양이 창조의 역사대로 회복됩니다. 

3) 붙어 있다.

하나님의 형상, 모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붙어 있음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 모양을 아주 쉽게 비유로 가르쳐 주셨는데, 가지는 원줄기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는 자동으로 맺는다고 했습니다.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 모양이 예수 그리스도인 자신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자동으로 회복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TV도 배 본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큰 파도에 의해 파손되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처럼, 인간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엄마 배 속에 아기는 탯줄로 엄마에게 붙어 있고, 10개월이 되어 밖으로 나와도 여전히 엄마의 탯줄에 붙어 있습니다. 단 그 탯줄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탯줄입니다. 엄마의 형상, 엄마의 모양은 붙어 있는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나타납니다. 아이는 엄마의 품에 붙어 엄마의 젖을 먹습니다. 이사야서 55:1-3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나님의 사랑의 젖을 먹어야 하나님의 형상, 모양이 살아납니다. 

동역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동물과 새, 물고기, 그리고 식물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을 만들 때도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삼위 하나님이 함께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한 부분에서 계속 ‘우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아담’이란 말입니다. 아담은 이브의 남편 아담을 말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즉 남자와 여자를 통틀어 사람, 아담이라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에게만이 삼위 하나님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창조입니까.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말씀에서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으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는 의미가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으로 아주 잘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동물, 새 물고기들을 창조하신 것을 보면 수컷, 암컷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육하고 땅과 바다에 충만히 번성하려면 수컷과 암컷으로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음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동등하시고 함께 창조의 역사에 동참하셨듯이 남자와 여자는 차별이 없고 동등하며 함께 해야 함을 말씀하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창세기 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으로 더 확실해집니다.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여자는 성도 교회를 말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동등함을 말씀합니다. 동등한 삼위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이 그대로 남자와 여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남자와 여자에게 그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명

창세기 1:28-30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동물, 새, 그리고 물고기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주신 복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도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생육히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말씀을 복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는 특별한 세 가지 복이 더 있습니다. 이 복들은 사명의 복입니다. 첫째로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을 사람이 정복해야 할 사명입니다. ‘정복’은 사람이 땅을 발로 밟고 터전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어디든 살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땅도 사람에게 속했습니다. 사람이 땅을 관리해야 함을 말씀한 사명의 복입니다. 둘째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사명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 땅의 짐승과 가축들을 사람이 다스리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물론 사람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동물을 다스리는 사명의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특권 중의 특권의 복이며 사명입니다. 그 어떤 동물도 사람을 다스릴 일은 없습니다. 사람이 동물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모든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 복입니다. 이것은 복이라고만 해야지 왜 사명이라고 합니까? 이사야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의 원래 창조하신 창조대로 된다는 것을 영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채소와 열매를 먹게 한 것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물들도 이렇게 먹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굳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이 퍙화의 중심에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어떤 동물도 평화의 중심에 있지 않고 오직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이 평화를 깬다면 모든 것이 다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자가 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 아담은 깨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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