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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부부제자 7주 시리즈(3) “부부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_에베소서 5장 22-30절

부부제자 7주 시리즈_3주차_”부부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본문: 에베소서 5장 22-30절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줄여서 OT(오티))은 주로 대학이나 기업, 교회에서 신입생의 수업이나 업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나 안내 교육을 뜻할 때 사용된다. 원래의 오리엔테이션이란 말은 동쪽(Orient)을 정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막에는 문이 하나가 있는데, 동쪽에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도 문을 동쪽으로 하였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동쪽에서 올 것이라고 믿는데 마태복음 24장 27절에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에서 기인한다. 물론 그래서 ‘동방번개’라는 이단도 생기기도 했다. 하여간 이단들은 좋은 것은 다 취한다. ‘새하늘과 새 땅’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신천지’가 그 좋은 단어를 못 사용하게 하기도 한다. 증인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이 가져갔다.

동쪽을 향해 기도하는 습관은 성당건축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전통적으로 성당은 동서(東西)를 중심축으로 좌석이 동쪽을 향하도록 한다. 신자들은 한 방향, 즉 동쪽을 향해 미사를 드리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당을 지으려고 할 때 ‘성당의 방향을 정하는 작업’을 할 때 동쪽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기에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이 정말 중요하다는 경험을 했다. 대학입학 후 청년부 Orientation겸 겨울수련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대학 신입생 Orientation에서 4년간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게 되었다. ROTC 오리엔테이션에서 대학 3-4학년과 군인으로서의 복무에 대한 청사진을 온전히 그릴 수 있었다.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정말 열심으로 참석했다. 방향을 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블루 프린트(Blue Print)를 보여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떤 결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는가? 또한 누구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는가? 그 때 교재가 무엇이었는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오리엔테이션을 받아 본 적이 없는가? 의외로 결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없이 결혼하는 부부가 많다. 그냥 주변에서 “처음부터 주도권 잡지 않으면 평생 끌려 다닌다. 초장에 잡아야 돼~”라는 말을 듣거나 결혼에 대한 몇 권 책 읽거나  요즘에는 유박사(유투브)에게 물어봐서 몇 편 본 것이 전부인 사람도 있다. 결혼 오리엔테이션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결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은 청소년, 청년의 시기를 거쳐서 결혼식과 주례까지 해주신 무궁교회 원로목사님이신 장달윤 목사님으로부터 받았다. 2017년에 소천 받으셔서 이 땅에서는 뵐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장달윤 목사님이 해주신 부부 오리엔테이션의 핵심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오늘 본문과 동일하다. 저희 부부 주례사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해주셨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오리엔테이션의 말씀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물론 실천은 어렵다. 그러나 방향을 정하고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는 천양지차가 난다. 이곳 랭리에서 휘슬러를 가겠다고 결정하는 것과 칠리왁을 가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완전히 반대 방향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어디로 갈 지 정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가야지 하면 과연 어디로 가겠는가. 

물론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가다가도 넘어지고 쓰러지고, 기름 떨어지고, 잘못된 Exit으로 나가고 들어가고, 타이어 펑크나고, 접촉사고 나기도 한다. 그러나 오리엔테이션이 되어서 방향성이 있다면, 다른 방향으로 가다가도 멈추고 다시 방향을 정하고(Orientation) 돌이키면 된다.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오리엔테이션된 방향으로 Return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결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는 지 모르겠다. 아니면 아예 그런 오리엔테이션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5장 말씀이 여러분에게 결혼 오리엔테이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한다. 한마디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아내는 남편을 예수님처럼 대하고,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이 아내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 

이시간 옆자리에 부부가 앉아 있다면 이렇게 고백해보자.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은 저의 주님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나는 예수님처럼 당신을 사랑하겠소.”  정말 그렇게 오리엔테이션 안되어 있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 줄 안다. 그래도 도전해 보고 실천해야 한다. 오늘부터 1일이다. 

결혼을 하고 정말 사랑과 행복한 꽃길을 걸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부모님들은 안 그래도 우리 부부만큼은 절대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많은 부부들은 계속적인 실패와 상대방에 대한 분노 때문에 결혼에 대한 핑크빛 미래는 산산히 깨어진다. 

말싸움이 시작되면, 세상에 이런 판사와 검사가 없을 정도로 단판에 KO시킬 수 있는 엄청난 방대한 자료를 쏟아 놓는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무력해제를 시키고 넉다운 시켜서 다시는 반발이나 도전할 수 있는 힘조차 다 빼놓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도 나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가장 약한 부분을 헤집고 들어와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상처에 소금 뿌림을 당한 적이 있었는가. 엄청나게 쓰라렵다.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다. 이렇게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불화살을 준비한다. 여러 곳에 발사한다. 그러면 이곳 저곳에서 불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승리의 개선나팔을 불어서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4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아내나 남편에게 승리를 한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러나 그 승리에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세상은 온갖 힘과 지배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데, 곧 승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와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신다. “너가 죽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오리엔테이션은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자. 예수님의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지 않고, 세속적인 오리엔테이션에 더 관심갖고 참여한 사람들이 많다. 세속적인 OT라고 하는 것 중에서 잘못된 기독교적 OT도 있다. 그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생명과 용서와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만 말해주고 회개와 순종에 대한 예수님의 부르심은 싹 빼놓고 이야기하지 않기도 한다. 

정말 예수님의 OT에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잘 될 것이야.’라고 가르치지 않으신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가를 물으신다. 마태복음 16장 24-25절에서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 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세례가 무엇인가.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다. 다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무덤에서 일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신분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는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이제는 내 자신을 위해 살지 않겠다고 하는 고백 아닌가. 

부부 오리엔테이션의 초점은 반복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주님을 대하듯 하고, 남편은 예수님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사는 부부를 얼마나 만나 보았는가.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서로에게 그렇게 해 주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을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분의 발을 씻겨 달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다.  주님이 당신을 돌보셨던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돌봐야 한다. 

정말 감정이 치밀어 올라서 싸우지 않으면 안될 일이 얼마나 많이 속출하는가. 하루에 몇 번이나 되는 지 세워보자.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겸손을 훈련받는 기회라고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를 겸손으로 옷입히시려는 하나님의 chance이다. Change를 위한 chance인 것이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는 “모두가 서로서로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내를 사랑하기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라고 하신다. 남편은 엄청난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다. 자신이 예수님이라고 가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내가 나의 사랑을 받으면서 예수님께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야 완성된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아내는 자신이 예수님과 결혼했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져야 한다. 더없이 이타적인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십자가를 떠올릴 정도가 되어야 한다. 까다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순결함을 지켜야 하며 예수님이 거짓말하는 것을 꿈꾸지 못하듯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꿈꾸면 안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 주심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쉽지 않은 명령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아내의 죄를 짊어지셨다. 이제 남편은 여전히 아내가 성화될 수 있도록 사랑하고 이끌고 희생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무엇인가? 아내가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지도록,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아내가 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아내가 확실히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희생해야 한다. 즉 아내로 하여금 세상에 속한 것이나 세상을 사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내의 중심이 영원한 것에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을 것이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 남편의 역할이야 말로 어마어마한 일임에 틀림없다.

아내들은 남편을 대하기를 주님께 하듯하고 있는가. 많은 여성이 남편에게 복종하지 못하는 이유를 엄청나게 쏟아낸다. 그러나 겸손은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느냐랑 상관없다. 다양한 반응에도 그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 같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눈을 꼭 감고 예수님인것처럼 인정해 주라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인정을 받으려고 엄청 애쓰는데, 제일 남편 인정 안해주는 여인이 바로 아내이다. 남편이 운전을 하는데 후진을 잘 하길래, 아내가 “여보 후진 잘 하네~” 했더니 남편 왈, “그럼 내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후진으로 갈 수 있다고~”라고 했단다.

정리해 보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아내가 어떻게 나오든지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겸손이다. 아내는 남편을 예수님을 보듯 하기로 결단하고 남편이 어떻게 나오든지 예수님으로 모시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겸손이다.

반응이 거세면 거셀수록 감사하는 것이 겸손이다. 스파링 파트너 제대로 만났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자신이 훈련받는 것이 바로 겸손이다. 교만이 무엇인가. 반응이 거세면 포기하는 것이다. ‘지가 뭐 대단한 줄 알고…’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는 더한 것을 준비하겠어.’ 라고 복수를 결심하는 것이 바로 교만인 것이다. 교만하면 훈련할 수가 없다. 겸손이 사랑과 인정의 훈련을 끝까지 받아 내는 것이라면, 교만은 사랑과 인정의 훈련을 발로 걷어차 버리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본으로 삼아 닮아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지원군이 되주셨다. 예수님처럼 될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의 소원도 함께 주셨다. 예수님의 성품 가운데 부부제자를 통해 닮아가길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겸손이다.  어쩌면 겸손은 부부제자가 결혼생활을 통해 익히고 배워야 하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즉 오리엔테이션에서 꼭 습득해야만 할 핵심 방향인 것이다. 만약 남편과 아내가 예수님을 닮아가자고 결정했다면 그 순간부터 방향은 결정된 것이다. 

어제 우리 집 장남인 우림이를 라이드를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노부부의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동네에 사시는 여든 중반의 은퇴목사님 부부이신데 저녁에 산책을 하시는 것 같았다. 우림이에게 “저 분들 누구신지 알겠니?”라고 물어봤더니 “서로 항상 웃으시는 분들”이라고 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고개가 꺾이기까지 돌려 그 노부부를 계속 보면서 30초 정도를 계속 소리를 내서 웃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웃으면서 산책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나 보다. 사실 놀랐다. 고개가 꺽이기까지 노부부를 지켜보면서 활짝 웃는 모습을 통해 노부부에게 제대로 결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가 저절로 나왔다.

오늘부터 1일이다. 방향은 결정되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된 것이라 믿어도 되겠는가. 흔들리지 않는 말씀에 오리엔테이션 된 것이다. 말씀대로 실천해 보자. 도전해 보자. 넘어져도 쓰러져도 실수하고 실패해도 방향은 정해졌으니 또 일어나서 그 방향, 오리엔테이션 보고 가보자. 그렇게 도전하는 저와 여러분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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