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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기도할수 밖에 없는 이유(마: 6:33)_라이프교회 장천득 목사

기도할수 밖에 없는 이유(마: 6:33)

라이프교회 장천득 목사

사무엘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동숭동 대학로에서도 한동안 유행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두사람이 “고도”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작품입니다…. 도무지 대화가 낯설고 단절된 대화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여기서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어딜가도 마찬가지야” “내일이면 다 잘 될 거야” “꼬마가 그러는데 내일이면 고도가 온대 여기서 기다려야 해”

“고도는 오지 않아”. 두사람은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허무하고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갑니다. 끝끝내 고도는 오지 않습니다. 앞뒤 전후 없이 두사람의 대화는 겉도는 대화로 시작해 끝까지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납니다. 두사람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입니다. 그리고는  허무하게 연극이 막을 내립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난해하다고 해서 부조리극이라고 명명합니다. 심지어는 이 작품을 쓴 사무엘 바케트조차도 고도가 누구인지, 어떤 의도로 작품을 썼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어떤 비평가는 이게 그냥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해설을 합니다. 

생명과 진리되신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불안감과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 채 막연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다 그렇게 끝이 납니다. 예수가 아니면 인생에 아무런 해답이 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실존적 문제에 대한 질문만 난무합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의 허무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린 내가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을 압니다. 이 세상이 어떠한지를 잘 압니다. 이 세상의 기원과 마지막을 압니다. 심각한 죄의 문제를 압니다. 어디에 구원이 있는지를 압니다. 누구를 기다리며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삶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답이 누구에게 있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생명의 근원이시며 문제에 대한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우린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안에서 하늘 아버지께 나아가며 주님과 대화하며 교제할수 있는 것입니다. 

1. 누가(who) 기도할 수 있습니까?

예수를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하늘 아버지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자녀의 기쁨이며 특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하늘 아버지(Heavenly father)을 찾고 부르고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고아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습니다. 고아는 돌보아줄 사람이 없고 이야기를 들어줄 아버지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인생을 고아처럼 혼자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기도는 아버지를 부르며 아버지의 품으로,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안아 주시는 은혜의 시간인 것입니다. 기도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의무나 율법이 아니라 자녀의 특권이며 기쁨입니다.

2. 언제(when) 기도할 수 있습니까?

바쁘고 분주하게 살다 보면 기도를 잊고 살아가기 십상입니다. 사실 기도를 잊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시간을 정해서 하면 좋습니다. 기도는 생명의 호흡과도 같습니다. 호흡을 하지 않는 영혼은 죽기 마련입니다. 영혼이 살기 위해서는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주님과 대화이며 사귐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성경은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무엇보다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가 기쁨이고 즐거움이 된다면 언제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쁠 때는 찬양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정직하게 아픔을 토로하며 탄식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만남입니다. 우린 언제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는 말은 사랑하는 아버지가 우리와 대화하고 교제(fellowship)하자는 주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든(anytime)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어디서(where) 기도할수 있습니까?

이 산도 저 산도 아닙니다. 기도는 꼭 교회당에서나 어느 특정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린 영으로 예배하고 영으로 만납니다. 모든 곳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이며 기도하는 처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전을 허무시고 우리 몸으로 성전을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장소(location)가 아닙니다. 성전 된 우리 몸이 기도하며 예배하는 처소입니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서 우린 기도하며 예배합니다. 그런 점에서 바로 지금 이곳에서(Here and Now) 우린 기도합니다. 교회당에서, 집에서, 사무실에서, 길을 가면서, 일터에서….. 어디서든 우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4. 무엇(What)을 기도할까요?

주기도문은 우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최고의 기도문(The best of the best)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무엇을 기도할지 우린 주기도문을 통해 배웁니다. 주기도문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기도문입니다. 주로 예배때나 주일에 사용되지만 사실은 날마다 일상에서 기도해야 하는 간구와 청원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린 하나님의 나라와 나의 현실이 만납니다. 주기도문은 내가 원하는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나라와 나의 현실이 만나는 교차로(intersection)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기도는 일방적 요청과 독백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나라와 나의 필요가 만나는 동시에 그분의 돌보심에 대한 신뢰와 나의 간절한 청원과 순종의 고백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무엇을 구할지 2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는 송축하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 자신에 관한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daily grace)과 죄 용서의 청원과 관계의 회복을 위한 결단, 세상 유혹과 원수 마귀로부터 지켜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와 친밀한 관계,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하심을 청원하며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5. 어떻게(How) 기도할까요?

기도는 감사와 찬양, 경배로 시작합니다. 사실 찬양 자체가 기도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와 간구로 나아갑니다. 사람들끼리 대화를 해도 일방적으로 요구만 하며 짜증만 내는 사람과는 아무도 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감사하고 기뻐하며 칭찬하며 응원하는 사람을 누구나가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과 구원하심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영광송으로 시작을 하고 죄에 대한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고백 되지 않은 죄는 관계적 단절을 가져오며 대화가 막히게 됩니다. 회개의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만한 마음, 악한 마음과 깨어지고 망가진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복을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거룩함을 입은 자녀의 기도를 주님은 기쁘게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장애물이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런점에서 회개, 치유, 용서, 관계의 회복을 위해 기도가 반드시 필요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을 입는 과정을 지나 신뢰와 확신으로 기도를 마무리 합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방식으로 최선의 때에 반드시 응답해 주심을 믿고 맡기면 됩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합력해 선을 이루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으로 기도해도 좋습니다. 시편은 개인적 기도와 공동체적 기도와 찬양입니다. 소리 내어 시편을 낭송하며 찬양하면 영적으로 유익하며 영혼이 새 힘을 얻습니다. 방언으로 기도해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기도를 내가 시작하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기도를 이끌어 가십니다. 기도하다 보면 기도가 나자신에서, 이웃, 가정, 교회, 열방으로 확장되어져 갑니다. 성령이 이끌어 가시는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자기중심(Self-centeredness)에서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깨어지고 망가진 세상(Broken people),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세상을 향한 중보기도로 확장되어져 갑니다.

6. 왜 기도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알고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강조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찾으라, 구하라, 두드리라” 는 말은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는 같은 말(same meaning in different languages to emphasize) 입니다. 하나님이 듣고 응답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분이 정말 선한 분이라면 말입니다.

결론

바빠서 기도할 수 없습니까? 핑게입니다. 바쁘기에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로만 바쁜 것입니다. 굳이 하나님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한 두번 기도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기도는 수단이 아니라 주님과 관계입니다. 기도를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청하라! 가장 좋은 것,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 자기 자신, 성령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은사(gift)로 주겠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어떤분들은 문제만 해결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단지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문제 해결사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원하십니다. 어떤 경우는 내면적 트라우마가 있을때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절감과 상처가 있다면 기도가 막힙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불신앙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기도가 흘러갑니다. 강팍한 심령, 탐욕으로 가득한 심령은 기도가 막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붙들고 있으면 기도가 막힙니다.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내 안의 우상을 제거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만이 유일한 구주이심을 믿어야 기도가 터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님을 만나려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갈망과 목마름이 있습니다.

기도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까? 영혼이 곤고한 밤중에는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며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힘이 없을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릴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 영혼이 살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해야 비로서 영혼이 호흡하며 세상을 이겨 나갈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생명줄입니다. 기도가 멈추는 순간 영적 호흡이 멈추고 우리의 영혼은 죽어갑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릴 만나 주시며 일하시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이 땅의 순례자, 이민자로 살면서 힘들고 고단한 현실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 인생 여정속에 기도의 영성이 새로워지는 여러분 되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부어 주시는 은혜로 넉넉하게 현실을 돌파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하늘 아버지가 부어 주시는 그분의 은혜와 자원(divine resources)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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