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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본것같은 성지순례] 바늘귀 문 교회(Church of St Alexander Nevsky)

바늘귀 문 교회(Church of St Alexander Nevsky)

바벨론 탈무드에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한 격언이 있다.  그 비유를 어느 랍비가 예를 들어 말했다. “금으로 된 종려나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바늘귀를 통과해서 걸어가는 낙타는 없다.”

현재 예루살렘 성 안 ‘예수님 무덤 교회’ 옆으로 알렉산더 네브스키(Church of St Alexander Nevsky) 러시아 정교회가 있는데, 그 곳에 서기 2세기 예루살렘 성의 바늘귀 문이 남아 있다.  바늘귀(the eye of a needle)란 말은 마태복음 19장24절, 마가복음 10장 25절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25절에 기록이 되어 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 19:24)

약대는 낙타를 말하며 1세기 예루살렘 성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가축 중에 가장 큰 동물이었다.  즉 바늘귀 문으로 낙타가 못 들어가는 것처럼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빈부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세주이시다.  이 성경 구절에서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학자들은 보통 현재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성의 성문에는 바늘귀라고 불렸던 조그만 문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늘귀는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해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예루살렘 성의 성벽은 16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슐라이만 대제(Suleiman the Magnificent)가 건축한지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성벽으로 되어 있다. 1세기 성의 흔적은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성전산의 서쪽벽(Western Wall), 다윗망대(Citadel of David), 예루살렘 남쪽 성밖 정결례탕(ritual bath) 정도만 남아 있다.  1세기의 성벽과 성문은 아예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 바늘귀 문이 없었다’라고 말하려면, 사람들이 다니는 성문도 없었다라고 말해야 될 것이다.   

예수님이 십지가를 지시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성밖의 골고다이다. 16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슐라이만 대제가 건축한 예루살렘 성은 성경 시대의 성의 모습과 차이가 나는 것이 다윗성이 성밖으로 나가 있고, 시온산도 성밖으로 나가 있는 반면에 골고다는 성안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거룩한 무덤(Holy Sepulcher)”이라고 불리워지는 골고다(Golgotha) 옆에는 러시아 정교회(Church of St Alexander Nevsky)가 있다. 1883년 러시아 정교회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굴된 교회 안에는 2세기 예루살렘 성의 성문과 바늘귀 문이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란 장소는 현재 예루살렘 성안에 있지만, 1세기때의 골고다는 “성문”밖에 있었다(히 13:12).

알렉산더 네브스키(Church of St Alexander Nevsky) 러시아 정교회에 들어가면 예루살렘의 성문에는 두 개의 문이 쌍으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문이 가운데 있고, 그 양 옆에 사람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문, 그것을 가리켜 바늘귀(the eye of needle)라고 불렀던 것이다. 성문에 바늘귀를 만든 이유는 보안상의 이유였을 것이다. 저녁에는 성문을 닫고 최소한의 인원만이 성문을 지키는데, 문을 열어 놓는다면 낙타를 타고 쳐들어오는 군사들을 막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한밤 중에 성에 들어올 용무가 있는 사람은 낙타와 같은 가축을 남겨두고 자신만 간신히 바늘귀라고 불리는 문을 통과해서 성안으로 들어 와 성문을 지키는 병사에게 보안검색을 받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많은 짐까지 진 낙타가 조그마한 문을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바늘귀 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한밤 중에 성문 앞에 도달한 대상(隊商)은 타고 온 낙타는 물론, 낙타에 실린 금은 보화를 가지고는 문을 통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안에 들어오고 싶은 자는 자신만 바늘귀 문을 통과하든지, 짐을 가득 실은 낙타와 함께 성밖에서 밤을 새우든지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1)

주님께서 이 말씀을 부자에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모든 부유함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재산, 명예, 권력과 같은 것을 넘어서는 보화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나 부자는 세상의 부귀를 선택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포기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에 대해서 이렇게 비유의 말씀을 하셨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마 13:46).

글, 사진_ 이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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